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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ANC 앞날/만델라 지도력 현저히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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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ANC 앞날/만델라 지도력 현저히 약화

입력
199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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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 “해방 멀었다” 불만 고조/강경파 득세 흑백협상 기로에지난 10일 백인에 의해 암살된 남아프카공화국 흑인 지도자 크리스 하니의 장례식이 19일 치러졌다. 남아공의 암살정국에서 최대의 고비로 여겨졌던 이날의 장례식은 수십만명의 군중이 거리로 나와 애도하는 가운데 폭력과 약탈행위가 벌어지고 최소한 6명이 숨지는 유혈극이 재연됐으나 군중이나 진압경찰이 모두 자제를 유지,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하니 암살로 빚어진 정치적 위기가 아직 완전히 수습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오히려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데클레르크 대통령의 백인정부가 주도해온 정치협상은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암살이후 10여일간의 정치상황은 권력의 중심축이 백인정부로부터 ANC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날마다 계속되는 유혈소요과정에서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진정을 호소하는 동시에 강경진압을 경고하는 등 양면책을 썼으나 결국은 사태해결에 아무런 역량도 발휘되지 못했다. 반면 흑인대중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흑인 지도자들이었다. 백인정권의 강력한 집권기반인 국영 텔레비전이 유혈소요기간중 만델라의 연설을 반복해 방송하는 대신 데클레르크 대통령의 짤막한 성명만을 내보낸 것은 이러한 권력이동의 실례였다. 하지만 대다수 흑인의 지지속에 정치협상을 주도해온 ANC 역시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다양한 유색인 정치세력의 결집체인 ANC에서는 특히 만델라를 위시한 온건파 지도부의 통제력이 큰 한계를 드러낸 반면 강경파의 위상은 강화됐다.

흑인들의 절대적 지도자로 내년의 총선이후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연시돼온 만델라는 평화를 호소하는 도중 군중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곤 했다. 반면 ANC에 참여하면서도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범아프리카회의(PAC)는 격분한 흑인대중의 정서를 이용,더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흑인들 사이에서 『만델라가 석방된지 3년이 지났지만 남아공의 흑인들은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ANC가 하니의 장례식이후 6주동안을 항의기간으로 설정하는 등 외형상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 것은 이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ANC 관계자가 『대중들의 분노를 분출시킬 통로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처럼 흑인들의 정서에 일면 부응하면서 지도력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같은 ANC 지도부의 대응은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협상 상대역인 백인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데다 항의기간중 예상되는 유혈사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쇠악의 국면으로 흐를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들은 만델라의 ANC가 지도력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90년 8월이후 거의 3년에 걸쳐 힘겹게 이끌어낸 흑백 대타협이 물거품이 되고 흑백간 내전이 벌어지는 최악의 혼란상으로 귀결되거나 PAC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상황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온건지도부와 급진 추종세력간에 다리 역할을 맡아왔던 하니의 죽음은 3백년만에 백인정권으로부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으려던 ANC에 중대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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