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하고 질서가 잡힌 사회일수록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깊은 법이다. 아무리 경쟁사회라지만 그들을 방치·학대하기보다 수용·보호하는게 오히려 떳떳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에도 맞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있는 것이다. 지체부자유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및 응급환자는 물론이고 노약자들이 두루 보호받는게 그런 이유임을 상기할 때,19일 새벽 논산에서 발생한 서울신경정신과의원 화재로 34명의 정신질환자들이 밖에서 꽉 잠가버린 포로수용소 같은 입원실에서 집단 참사한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창피스런 사건이다.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책임소재야 수사와 현장감식으로 차츰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이런 꼴로 팽개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실종된 양식과 무너진 의도가 더욱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GNP만 오른다고 무턱대고 선진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황금만능의 무한경쟁 앞에서 걸핏하면 법의식과 함께 인간성마저 잃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번 참사는 무서운 교훈이요 질책이 아닐 수 없다.
참사 하룻만에 드러나고 있는 구체적 문제점들도 헤일 수 없이 많다. 먼저 지적되는게 병원시설의 「원초적 화재무방비」이다. 19개 병상허가를 받은 규모여서 소방검사 제외대상임을 악용한 탓인지 대피복도나 비상구·방화차단벽과 문도 없는 조립식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런 건물이 어떻게 준공검사를 받아 정신질환자를 받을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다.
문제가 환자관리에 이르면 누구도 낯을 들 수가 없을 정도이다. 19병상 정원의 배가 넘는 41명의 정신질환자를 수용했다고 한다. 지난 1월 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요양기관 지정을 받아 3월19일 의원 문을 연 39세의 젊은 원장은 1개 입원실에 의료법상 일반수용기준인 6명을 넘어 남자환자의 경우 한방에 17명까지 수용했던 것이다. 질환정도가 다르고 정상적 사고 및 행동기능을 잃은 정신질환자들일수록 개별 격리입원이 필요하고,환자관리도 더욱 철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많은 환자를 원장·간호보조원과 관리인 2명 등 4명만이 맡아왔기에 손이 모자잘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손발을 묶고 밖에서 출입문을 잠그고 입원실내 관리를 환자에게 맡기는 등 소위 포로수용소식 환자관리를 가책도 없이 해왔던 것이다.
뜨거운 연옥속에 버려진채 처절히 숨져간 그 환자들의 한과 유린된 인권을 과연 누가 무한보상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입원측의 법적인 배상 책임이야 의당 추궁되겠지만,그것만으로 이같은 참사의 재발방지를 결코 보장할 수도 없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오늘날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고 의료수준도 선진국에 육박한다지만 정신질환자들의 진료와 수용 및 복지를 위한 대책은 소홀하기만 했다. 국내 환자만 94만여명에 입원대상도 10만9천명에 이르는데 불과 31%만 수용할 수 있을 뿐이고,진료나 보호보다 격리감금과 인권유린의 말썽이 끊일 새가 없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신질환자를 위한 국가적 수용·보호대책과 법제화가 시급하다. 의료계 스스로도 책임을 절감,법에 앞선 윤리적 자정대책을 나서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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