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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돌아오라/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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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돌아오라/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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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씨가 북한을 방문하고 나온 것은 1989년 4월24일이었다. 그후로 일본·독일을 거쳐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이번주로 만 4년의 표류생활이다.민족문학작가 회의는 이 모임의 이사로 있는 황씨의 귀국을 주선하기 위해 지난 3월23일자로 공개서한을 보내 그의 입장을 물었다. 작가회의측은 황씨에게 지금이 그가 귀국하기에 「가장 적잘한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로서는 최소한 어떤 여건이 마련되어야 귀국하겠는지,작가회의의 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조건없이 귀국하겠는지 등을 타진했다. 황씨는 3월28일자로 작가회의에 보낸 회신에서 『현재 북도 그렇겠지만 남한 사회도 비록 밖에서 피상적으로 느끼는 바이지만 많이 달라졌지요. 이 달라진 변들을 확대해 나가는데 저도 기꺼이 동참할 생각입니다. 나의 독자와 나를 형성해준 동료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이 언제나 변함없는 신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도 현재가 제 귀국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데에 동의합니다. 저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이라 하여 인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안전귀국」이 이루어진다면 전에는 못다했던 「창작생활」에 전념할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황씨는 평양을 떠나온 당시 북경에서 『나는 공명정대하고 떳떳하게 일했다. 체포된다면 통일운동사에 큰 업적이 될 일이므로 영광이다. 구속되느냐 안되느냐에 상관없이 내 계획대로 귀국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에는 『북한기행문을 쓰고 귀국한다』고 밝혔다. 북한방문기는 결국 독일로 가서 썼고 그후 뉴욕에 거처를 옮긴채 귀국하겠다던 말이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구속여부에 상관없다던 처음 결의가 이제는 작가회의에 보낸 회신에서 보듯이 「안전귀국이 이루어진다면」으로 바뀌었다. 그런가하면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는 우리 정부가 92년 2월로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만 경신해준다면 안전귀국의 보장이 없더라도 돌아가겠다고 혼선되는 말을 하고 있다.

황석영씨는 분단이후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남한 작가다. 그리고 우리시대 최초의 「망명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입북목적은 작가적 정신에서 출발한 순수한 것일 수 있다. 그가 북한에 간 것은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문화인들과의 폭넓은 접촉을 위한 것이었으며 통일의 전단계로서 민족문화의 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소통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는 그 자신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작가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고올 의무가 있다는 말도 그것이 진정이라면 진실이다.

그러나 황석영씨는 밀입북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법을 어겼다. 그는 『분단시대의 작가는 분단의 모순을 정면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할때 그 존재이유가 있다고 보고 과감하게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 갈 때는 분단의 벽을 과감하게 뛰어 넘을 수 있었겠지만 올 때는 그 분단의 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분단상황의 현실이다. 분단시대의 작가는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그 노력은 현실에 발을 디딘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비극이 있다.

황씨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제5조 1항과 제8조다. 그가 진정 순수한 작가적 사명감에서 저지른 일이라면 처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비겁과 겁나는 작가정신이 아니다. 작가란 달아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이다. 피해가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이다. 항상 머리를 꼿꼿이 세운채 비바람을 바로 맞지 않으면 안된다.

문익환목사도 어린 임수경양도 북한에 몰래 갔다가 자기 발로 돌아왔다. 감옥살이를 했고 지난번 대사면으로 풀려나왔다. 황석영씨도 그때 바로 귀국했으면 지금 자유의 몸이 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실기였다.

황씨는 『작가에게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다』라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 그는 표랑 4년동안 귀선 이국어의 소음속에서 모국어의 실어증에 시달려온 한국의 작가였다. 문학작가에게 모국어는 자신 자체다. 그것을 잃는 형벌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 어찌 감옥의 형벌이 그보다 더 고통이겠는가.

우리는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의 재능을 아낀다. 그는 89년이후 외국살이를 하는 동안 한편의 작품도 써내지 못했다. 그 볼모가 안타깝다. 독일에서 쓴 북한방문기도 그의 평소 필력이 아니라는 평이었다. 고국땅을 떠난 작가는 물을 떠난 고기다. 인간은 숨쉬되 작가는 살아있지 않다. 한나라의 위대한 문학은 그 나라의 지기가 낳는 것이다. 설령 감옥 안이더라도 그 땅이 고국의 땅인한 이국의 광야보다도 작가의 상상력에는 더 자유스럽고 더 생산적이다.

황석영씨의 오랜 부재는 우리 문학의 손실이다. 그는 북한을 다녀옴으로써 문학적 상상력을 넓히는 것이 큰 소득이라 했고 남과 북이 동시에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작가로서 유일한 그의 특이체험은 우리 문학을 살찌울 것이다. 「창작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황석영씨는 구속을 각오하고라도 어서 고국에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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