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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는 4·19/이계성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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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는 4·19/이계성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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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인 80년 4월19일 상오 9시 서울 수유동 4·19묘역. 봄날씨를 시샘하듯 장대같은 빗줄기가 묘역을 때리고 있었다.폭우를 뚫고 검은 양복을 입은 한떼의 사람들이 묘역에 들어와 헌화를 하고 4·19 영령들을 추모했다. 뒤이어 비슷한 숫자에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임무를 교대하듯 헌화와 추도를 하곤 돌아갔다.

두무리는 묘역에서 마주쳤지만 냉랭하게 비켜갔다. 두무리중 한무리의 수장은 지금은 대통령으로 국권을 한손에 장악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였고 또 한무리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후 정계를 은퇴,영국에 머물고 있는 김대중씨였다.

80년 「서울의 봄」 시절,두김씨와 현 민자당 대표인 김종필씨(당시 공화당 총재)는 소위 「3김시대」를 열면서 5·17사태 직전까지 대권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야당의 지도자였던 두김씨가 4·19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의식이었다.

「냉랭」했다는 것은 대권경쟁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족.

13년전 「장면」의 한 당사자였던 김 대통령이 이제 4·19 「복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4·19묘역을 참배한다고 한다. 13년전 빗속의 참배에서 결심한 것을 실행에 옮기듯 김 대통령의 4·19 「복원」의지는 매우 단호한 듯하다.

사실 4·19는 30여년간 의거로 불려져 왔지만 민주화혁명으로 재조명 되어야 마땅하다. 지난 60년의 4·19는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었지만 5·16이후 30여년간 군출신 위정자들에 의해 위축되고 변질되어왔다.

이러한 위축과 변질은 4·19 기념식을 의례적인 기념행사로 만들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었다. 4·19 기념식은 유신이전까지는 총리가 참석 주빈이었고 유신이후에는 부총리나 행사 주무장관이 마지못해 주빈으로 참석하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아왔다.

정부가 4·19 기념식을 범정부차원에서 기념키로 하고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4·19가 의거가 아니라 민주화혁명이며 이 혁명의 본뜻을 살린다는 취지에서이다. 이러한 정부의 자세전환은 『개혁은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말과도 맞아 떨어진다. 「미완의 혁명」이었던 4·19가 13년전의 참배객이 대통령이된 정치여건의 변화에 의해 「완성」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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