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촉진” 이상한 냄새 경계/민주계/“환부 도리다 주객 공멸소지”/민정계답답함과 연민,대상을 모르는 분노. 지난 14일 민자당의 최형우 전 사무총장이 아들문제로 사표를 던진뒤 민주계 인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늦게까지 통음했다. 모두 비슷한 심정으로 이날의 사건을 되새겼다.
최 전 총장 사건은 개혁정국의 와중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개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권은 일제히 「개혁전선 이상없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단 개혁의 핵심인 민주계뿐만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다소 흥분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감정적 반응을 보인 대다수 민주계 인사들은 이번 최 전 총장 사건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새정부 출범초기 조각 파동에서 나타났던 바와 같이 수구세력의 조직적 저항의 기미가 느껴진다는 얘기이다.
이같은 「음모설」에 대해 민주계 인사들은 물론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상당수 인사들이 막연하나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끼는 최 전 총장이 갑작스럽게 퇴진한데 대한 대상없는 분풀이일 수도 있고 힘은 있지만 당내 소수파임이 분명한 그들만의 독특한 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틀림없는 한가지는 민주계가 최 전 총장을 새정부 개혁드라이브의 최대 「희생양」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기왕 희생을 치른 마당에 개혁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얘기로 무리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 민주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김영삼대통령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어려움에 부닥칠 때는 정면돌파를 하는게 김 대통령의 장점이다. 최 총장 일은 오히려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황명수 신임사무총장의 얘기도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준다. 황 총장은 15일 아침 취임식에서 『이런 일로 개혁의 고삐가 늦춰지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뒤 『민자당은 개혁의 칼자루와 칼날을 함께 잡고 있는 처지라는 사실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민자당이 개혁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그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이처럼 더욱 강도높은 개혁을 전망하는 민주계측의 시각속에서는 『여기서 중단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라는 일종의 「오기」까지 깔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막연한 「음모설」 주장에서 볼 수 있듯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바짝 긴장하는듯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마치 후보경선이 이전의 민주계처럼 약간의 피해의식이 스며있는 측면이다.
민정·공화계도 개혁강도가 느슨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회의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우선 민정계측은 과거의 비리를 단죄하는 방식의 개혁조치로는 최 전 총장 사건같은 유사사례가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뢰밭」이 도처에 깔려 있고 유탄이 난무한다는 주장이다.
경기지역의 한 의원은 『우리나라 자체가 짧은 시간안에 변칙으로 성장한 나라』라고 전제하면서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좋지만 범위를 잘 정해놓지 않으면 심장까지 건드리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현재의 개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민정계 인사들은 이번 최 전 총장 사건을 「음모」의 시각에서 보지는 않지만 앞으로 개혁방향이 과거 힘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될 경우 개혁주체들의 희생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혁주체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개혁대상들이 「반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상당수 민정계는 또 최 전 총장의 퇴진을 보면서 김 대통령이 측근인사들을 너무 빨리 전면에 내세웠다고 지적한다. 최 전 총장이 불과 취임 한달반만에 상처를 입고 개혁현장에서 물러남에 따라 다른 실세들의 수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으며 그만큼 김 대통령의 가용측근 인력이 한계에 와있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일각에서는 최 전 총장 사건을 민주계 내부의 헤게모니싸움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영남권의 한 민정계 의원은 『현재 분위기상 수구세력은 반격할 생각을 할 처지가 아니다』면서 『오히려 청와대 등 민주계내에 최 전 총장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민정계 인사들은 최 전 총장 사건이후에 더욱 강한 개혁돌풍이 몰아칠 것을 우려하는 눈치이다.
또한 민주계측도 「중단없는 개혁」을 장담하면서도 한편으론 민주계 식구들의 어려움을 총괄해 해결해주던 최 전 총장의 「장남」역할이 제대로 이어질 것인지 걱정하고 있다.
이와함께 신임 황 총장이 최 전 총장만큼 김 대통령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점도 민주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최 전 총장의 퇴진은 개혁핵심세력이든 아니든 민자당 전체에게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뜻하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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