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침체의 늪에서 헤매던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4월에 접어들어 주가지수는 7백선을 껑충 뛰어 넘었고,주식거래량이나 거래액도 신기록을 수립했으며,소액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개미군단을 형성하였다.주가는 경제는 물론이려니와 정치,행정 등 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나타내주는 바로미터다. 따라서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한국의 현재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경기회복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수출로 보자면 반도체 관련제품은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조선은 작년에 이어 계속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자동차 역시 잘 풀리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 1,2년간 꾸준히 추진한 안정정책이 가격경쟁력을 다소 회복시켜 주었고 바닥지점을 벗어난 미국 경기가 완만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 또한 기록적인 엔고현상도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을 올려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만약 국내경기가 4,5년동안의 침체를 겪고나서 이제 바닥지점을 통과한 것이 확실하다면 정부가 신경제 100일 계획을 통해 시도하고 있는 수조원의 자금방출은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돈은 이미 많이 풀린 상황에서,그리고 바닥을 통과한 시점에서의 확대정책은 그냥 놔두어도 살아날 경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물가불안과 새로운 거품의 형성이다. 정부는 단기부양책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금의 흐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또한 한국경제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이 다시금 드러났다. 그런데 철강·반도체는 여전히 미국의 반덤핑판정을 기다리고 있고,다른 수출상품도 EC로부터 부단히 견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제 100일 계획은 지나치게 대내지향적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84페이지 짜리 「신경제 100일 계획」을 읽어보면 대외통상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신경제 100일 계획 수립자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한 직후 100일간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주로 국내문제,특히 경제문제에 집중한 어프로치를 배워온 듯하다. 루스벨트는 100일 동안에 공공사업이나 농업,사회복지 등에 관한 새로운 연방정부기관을 창설하여 대공황에 대처했다.
따라서 이왕 배워오려면 제대로 배워온다고 신경제 100일 계획도 대내지향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경제의 내실만 기하면 되었지 대외통상에 신경을 쓸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옳은 얘기다.
그러나 30년대 대공황 당시와 지금은 다르며,또 미국과 한국은 더욱 다르다. 당시는 세계적 무역·환율전쟁 속에서 미국식 고립주의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좋든 싫든 세계는 하나이며 특히 한국은 외국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2월26일 아메리칸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천명했듯이 아피으로 국내적으로는 투자를 증대하는 동시에 재정적자를 줄이는 계획을 실시하여 미국 자신의 경제질서를 바로 잡는 동시에,대외적으로 무역을 안보의 우선적 요소로 삼아 외국으로부터의 재화나 서비스 및 투자를 환영하되 상대방이 이에 상응하는 개방을 안한다면 그 나라의 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한 조치를 즉각 취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새로운 정책기조는 기본적으로 산업정책과 이것을 위한 보호무역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며 적어도 20세기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대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계획을 십분 활용하되 좋든 싫든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우리의 무역시스템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과거 우리나라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너무 남발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의 선택의 폭은 좁다. 몇가지 선택대안을 생각해 보면,우선 현 수준이상의 개방은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거센압력을 초래하고 한국인의 반미감정을 유발할 것이며 지역안보에 도움을 안 줄 것이다. 둘째는 현재보다는 조금 더 개방하되 마지노선을 긋고 지킬 것은 끝가지 지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인의 감정과 가장 잘 어울릴지 모른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에 아예 무릎을 꿇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호감을 사기는 커녕 우리를 업신여기게 할 것이다. 이외에도 몇가지 다른 선택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중 어떤 것이 바람직하며 또 실현가능한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이에 따른 「고통을 부담」해야만 하는 계층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추측건대 개방의 확대쪽을 선택한다면,그 고통은 노동자·농민·중소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들에게 언제까지 「나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개방을 저지하겠다」고 약속할 것이며,또 이들에게 언제까지 「고통의 분담」을 강요할 것인가. 김영삼대통령은 개방과 관련하여 공평하게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도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미국은 과거처럼 유예시간을 주고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 개방을 통고하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클린턴행정부의 「최초의 100일(1월 하순∼4월말)」이 다 가기전에 빨리 통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되 못지킬 것은 약속못한다고 솔직히 말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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