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도로공사 등 23개 정부투자기관의 연간 총예산액을 합하면 40조원이 넘는다. 각 기관의 사업내용도 방대하다. 행장이나 사장 한사람이 의결과 집행을 도맡는덴 문제가 없지 않다. 공기업의 경영체제를 집행장과 이사장으로 대표되는 비상임이사회로 2원화함으로써 정부 승인없이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하자는게 정부투자기관의 이사장제다. ◆취지는 나무랄데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제도가 도입된 84년 5월부터 88년 11월까지 4년6개월간을 추적한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보고서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동안 투자기관이 의결한 2천2백32개 안건중 이사회에서 수정한 것은 15.5%인 3백47건이 고작이었다. 이사회는 거수기 노릇만했고 이사장은 방망이만 두드린 꼴이었다. ◆그래서 이사장제 무용론이 나왔었다. 그래도 이사장 자리는 꽤 괜찮다고 한다. 비상근이지만 여비서와 큼직한 사무실이 주어진다. 월 2백만원 이상의 판공비도 쓴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공사적인 개인활동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이사장 자리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이사장은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로 채워졌다. ◆일에 도움은 커녕 귀찮은 존재로 눈총받기 일쑤였다. 5·6공시절 내내 그랬다. 본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선거때 이사장제 폐지를 공약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후 식언하고 말았다. 집권말기에는 엉뚱한 사람을 이사장으로 앉혀 이사장제에 말썽을 보태기까지 했다. ◆김영삼정부는 잘못된 지난달의 제도나 유산과의 단절에 대단히 과감하면서도 정부투자기관 이사장제 폐지론만은 왠지 못들은체한다. 건설부 산하기관 이사장 4명과 상공부 산하기관 이사장 내정자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내정자의 면면이 5·6공 때보다는 비정치인,비군출신이 많지만 그렇다고 1백% 전문성을 고려한 내정만도 아니다. 하급 공무원의 봉급까지 동결,고통분담을 호소하는 김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별로 효율적이지도 못한 이사장제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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