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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 정책에 조언/조순 전 한은 총재(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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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 정책에 조언/조순 전 한은 총재(초대석)

입력
199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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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단기승부 부작용 크다”/행정규제로 인플레 막는건 잘못/불로소득 제거엔 실명제 효과적/통화관리는 탈정치가 필수… 기업도 정부지원에 기대선 안돼▼새정부는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하고 경제회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33년 3월 취임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3월부터 6월까지 「뉴딜 100일 정책」을 펴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그 목적은 1928년부터 일어난 대공황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미국은 물가가 폭락하고,통화가 엄청나게 줄고,실업률이 25%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거의 매주 한건씩 중요법안을 15건이나 제정하면서 통화의 팽창과 광범위한 정부개입을 통해 경제의 대전환을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플레 압력이 크고,실업률이 3% 정도이고,통화도 17%선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그때 자유방임의 경제에서 공황이 일어났으나,우리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따른 폐단이 쌓여왔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신경제 100일 계획」이 「뉴딜 100일 정책」에서 조금이라도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면 이와같은 차이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가격구조 왜곡 우려

▼그같은 차이점을 전제로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정부는 우선 경제를 활성화하고 그후에 경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활성화는 수출의 증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수출증가는 경쟁력을 회복해야 하므로 단시일에 이룩하기 어렵고,결국 너무 활성화에 치중하다보면 수출보다 내수를 증가시켜 인플레와 국제수지 악화를 가져올 위험이 큽니다. 또 경제정책이란 집행에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결과를 빨리 나타나게 하려고 인위적인 노력을 하다보면 장기적인 경제구조상의 부작용이 커집니다. 생필품가격을 행정력으로 억제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행정규제로 인플레를 막지는 못합니다. 가격구조가 왜곡되면 가격을 통제하기 보다 나중에 풀기가 더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인플레요인이 있다면 차라리 통화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고(go),스톱(stop),고,스톱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89년에는 스톱,90년에는 고,92년에는 스톱,다시 93년에는 고로 돌아섰는데 인위적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국민경제생활도 그렇고,정부의 경제운영도 그렇고,모두가 길게보면서 가야 합니다. 앞으로 긴 시간이 남아있으니 자생적인 성장궤도를 확실히 깔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경제는 정치와 달라서 단시일에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생적인 성장궤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본적으로 지난 30년동안 형성된 중앙집권적인 경제관리 질서를 진정한 자유경쟁 질서로 바꿔서 창의력과 공정한 룰에 의한 자유경쟁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자생적인 성장궤도라고 하겠습니다. 좀 추상적일지 모르나 경쟁화,공정화,투명화,안정화,국제화로 새궤도를 놓아야 합니다. 공정한 룰에 의해 더 많이 경쟁하고 국제적으로 통하는 룰을 익혀야 합니다. 지금처럼 국제화돼가는 세상에서는 안정없는 성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경험을 종합해서 보면 안정된 나라가 결국 더 빨리 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도마련 뒤따라야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을 어떻게 정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재로서는 국민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단계이나,이를 계기로 사회가치관이 건전해지고 기강이 확립되도록 제도마련이 뒤따라야 합니다. 지금은 새나라 건설에 국민역량이 생산적으로 집결돼야 할 때이므로 빨리 이 문제를 의혹없이 매듭지어야 합니다. 사안 자체가 법적인 문제뿐 아니라 윤리적인 관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결국 이 문제는 정치적 지도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경제의 성장과 함께 지도층의 도덕성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다른 선진국들은 산업혁명과 시민의식 혁명이 같이 일어났으나,우리는 외국의 기술도입으로 산업혁명만 일어나고 의식혁명이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경제 제일주의를 밀고 가는동안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의 혼돈이 일어났으며,지도층 역시 국민의식을 끌고 나간다는 긍지대신 수단방법 안가리고 치부하겠다는 천민의식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경제발전과 함께 경제질서의 룰을 세우지 못했고,인플레를 막지못해 불로소득의 기회를 사방에 열어놓게 되었습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다보니 시장경제의 원칙과 규율이 살아나지 못한 것입니다. 재산공개에서 드러난 지도층의 총체적 부패와 도덕불감증은 경제발전에서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부총리로 1년3개월,한은 총재로 1년동안 재직하면서 자신의 경제철학을 펴지 못하고 결국 정치권에 이용만 당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8년말부터 90년 3월까지 부총리 재직중에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경제안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유경쟁의 틀을 잡고,공정한 자유경쟁의 룰을 확립하여 자생적인 경제기반을 마련하고,토지공개념·공정거래 강화·실명제 등의 개혁으로 불로소득의 원천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92년 한은 총재시절에는 물가안정과 금융의 정상화·자율화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나의 경제철학을 펼 수 있었느냐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으나,우리 경제가 아직도 그 당시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총리시절에 강연한 내용을 다시보면 단어 몇개만 바꿔서 요즘 내놔도 통할 정도입니다. 경제 실상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경제 참여가 자신의 학문에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사적으로 말하는 것은 외람되지만,내 경우 실물경제 운영과 금융운영의 경험이 학문에도 큰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득도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옳은 것이 무엇이냐를 찾는 구도자의 입장에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나는 공직경험을 통해서 그동안 주장해온 균형성장론과 안정론에 대한 확신을 더욱 다질 수 있었습니다』

○결단부족이 원인

▼노태우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약속해놓고 시행하지 못했던 것은 결단의 부족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융실명제는 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들어 있었고,어느정도 준비도 돼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결단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새정부는 실명제가 침체된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습니다. 정부 주장처럼 당분간 시행을 미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결단만 있다면 강도를 조절하면서 지금이라도 시행하는 것이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질서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느정도의 부작용은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명제만 시행하면 금융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임기 4년이 보장된 한은 총재 자리에서 1년만에 물러나셨는데,자신의 경제철학중 어떤 점이 「신경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은법이 개정되었다면 한은 총재가 정치적 입김으로 경질되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중앙은행의 독립에 대해서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이란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중앙은행이 통화관리와 금융질서의 파수꾼 역할을 다하도록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우고 위상을 보장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세계 각국이 금본위제 등으로 통화남발을 막는 안전장치가 있었으나,관리통화제로 넘어오면서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풀려있는 상황입니다. 행정부란 아무래도 가시적인 효과에 집착하게 되므로 통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위험이 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은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통화가치의 수호와 물가안정에 전념하는 기관이므로 한은법을 개정하여 독립을 보장하면 나라경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선기간중 통화관리에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까.

『대선기간중 통화증발을 막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으며,내가 공금리인하에 반대했던 것도 통화증발을 막기위한 것이었습니다. 금리인하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당시 시장금리가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공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습니다. 대선기간중 통화증가를 18.5% 이내로 하겠다는 것이 한은의 목표였는데,그것을 지켰으니 다행입니다』

▼기업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규제를 풀어달라,금리를 내려달라고 기업들이 정부에 요구하고 있으나,자기혁신이 앞서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정부 혼자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국제경쟁에 대한 기업의 태도와 의식이 달라지지 않은채 정부의 지원만으로 경쟁력이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은 경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은 나라전체를 이끄는 분이므로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경제란 대통령이나 정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기업과 국민이 다 참여해서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6공 경제는 실패했다는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패라고 규정하는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6공의 아쉬움은 경제상황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점은 기업,국민,언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0여년동안 밀고 왔던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으로는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고,자유경쟁체제를 확고부동하게 밀고 갔어야 합니다. 6공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과도기였으며,이제 새정부는 공정한 자유경제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주기 바랍니다』<대담 장명수 편집위원>

□약력

▲1928년 강원 명주출생

▲서울대 상대 졸업·미 버클리대학서 경제학박사

▲미 뉴햄프셔대 교수

▲서울대 교수(69∼88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88년 12월∼90년 3월)

▲한국은행 총재(92년 3월∼93년 3월)

▲저서 「화폐금융론」 「한국경제의 현실과 진로」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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