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처럼 사회와 나라도 신진대사를 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 살아남자면 새로운 영양분이 계속 공급돼야 하고 찌꺼기는 배설돼야 한다. 이래서 역사에는 변화와 개혁이 굽이쳐 흐른다. 우리도 지금 변화와 개혁의 탈바꿈속에 있다.김영삼대통령이 역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한국」 「신경제」다. 현재 개혁은 사정과 정화가 선도하고 있는 단계다. 장·차관,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이에 따른 인사파동 또한 감사원의 본격적 가동 등 관·정계에는 소위 사정한파의 수은주가 상당히 내려가 있다.
그러나 관·정 일각에서는 『경제위축』 등을 내세워 사정의 완화를 주장하는 소리가 지난 주말을 전후해 표출되기 시작했다. 김종필 민자당 대표의 자당 총무단의 골프회동(11일)과 황인성 국무총리의 「기업활동 활성화를 위한 관계장관 간담회」(10일)에서의 「골프해금」 시사 등이다. 특히 황 총리는 이 자리에서 기업활동에 위축을 주는 사정활동을 지양할 것을 지시했고,이경식부총리도 간부회의(12일)에서 『사정한파에 지나치게 위축돼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선 좋은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며 『기업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현장확인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황 총리,이 부총리 등 당·정 고위층은 나름대로 불황타개를 위해서는 사정에 따른 공직자사회의 위축과 이것이 경제계에 미치는 역작용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황 총리와 이 부총리는 한때 기업에도 있어봤던 사람들이다. 정부내에서는 그대로 기업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발상과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테크너크랫(전문관료)으로서의 생각이다. 그것이 그들의 한계다.
역시 김영삼대통령의 사고는 달랐다.
그는 12일 『부정부패척결은 새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로서 결코 중단되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정화의 지속을 천명했다. 그는 또한 『부정부패의 척결이 경제를 위축시킨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며 주로 기득권자들의 자기 변호 논리다』라고 지적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고질적인 경제성장의 장애요소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곡을 찌른 촌철살인이다.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결과를 역사에 의해서 심판받겠다는 개혁지도자로서의 자세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예리한 통찰력 또한 번뜩인다.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대해 무수한 요인들을 지적할 수 있다. 고임금,고금리,낮은 기술,도로·항만·철도 등 부족한 사회간접자본,마케팅의 낙후 등등. 그러나 최대의 장벽은 부정부패다. 정·경유착,관·경유착,기업간의 뒷거래 등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풍토에서는 경제논리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만이 남게 된다. 가치관의 붕괴,경제정의의 상실,빈부격차의 심화 등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퇴화를 가져온다. 외국과의 경쟁에 참패가 자명해진다.
오늘날의 국제경쟁 전쟁은 사실상 총력전이다. 사회가 깨끗하고 가치관이 건전하며 국민성이 문명적이지 못하면 궁극적으로는 승리하지 못한다. 우리 경제는 단순히 값싼 노동력과 낮은 기술 및 자본만으로 힘을 겨루던 단계는 이미 훨씬 지났다. 이제는 고도기술과 집약된 자본 및 세계적인 마케팅으로 대결치 않으면 안되는 준선진경제 전에 들어서 있다. 체제·제도의 합리화와 근대화가 요구된다. 부정부패의 발본색원은 벌써 이뤄졌어야 했다. 지금 사정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고 거부반응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늦기전에 수술하면 살 수 있는 암환자에게 일시적 고통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정부패의 척결은 경제희생의 필요조건이다. 중단이나 완화는 커녕 서둘러 제도화,정착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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