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판매·투기치부… 90년 교통사고 사망/재단설립 10년만에 종합대로 승격시켜경원대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이던 김동석씨(90년 사망·당시 51세)가 교육가가 된 것은 39세이던 78년 경원공업전문대를 개교하면서부터. 연세대 졸업후 연탄회사에 취직했던 김씨는 그후 독립해 성남지역 연탄판매권을 독점,부를 축적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계속해 10년만에 현재의 경원학원 부지를 사들여 전문대부터 설립했다.
김씨는 전문대 설립 4년만에 다시 단과대학인 경원대를 개교했고 또 6년만인 88년 3월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김씨는 민정당이 창당되던 81년부터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여권과 긴밀한 유대를 맺어 학교를 발전시켰다.
민정당 중앙위원회 위원외에 원외의 교육분과위원장 등 17개 분과위원장과 중앙위원회 집행부를 연결시키는 원외 총간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김씨는 5공 실세중 1명이던 L 현 의원,문공위 소속 S·J의원 등과 특히 돈독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같은 정치적 인맥을 통해 당시 문교부 관계자 등 관계인사들과도 뒷배경이 든든함을 과시하며 교분을 텄고 이 과정에서 거액을 서슴없이 내놓아 「통 큰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같은 김씨의 행적을 입증하듯 81년 이후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방침에 따라 서울소재 대학의 정원이 동결된 것과 달리 성남시에 있는 경원대는 경기도라는 이유로 매년 큰폭으로 증원과 학과신설 인가를 받아냈다.
김씨가 이사장겸 총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간간이 입시부정 등의 시비가 있었으나 별문제없이 유야무야됐던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의 가정생활은 원만치 못했다는 것이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김씨는 90년 9월22일 새벽 경기 광주군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다가 사고로 사망했는데 「한밤중의 나들이」에 대해 가정생활과 결부시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씨는 이날 자정께 잠이 오지않아 원주의 선영에 다녀오겠다며 나간뒤 5시간만에 택시가 도로변에 정차된 트럭을 들이받는 사고로 운전사와 함께 숨졌다.<유승호기자>유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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