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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공직을 맡는 사연/최규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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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공직을 맡는 사연/최규장(특별기고)

입력
1993.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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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의 첫 안보특별보좌관으로 기용된 앤터니 레이크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그의 목장에서 임명 소식을 들었다. 학생시절 트랙터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농삿일을 했던 그는 트랙터운전대를 잡아보는 것이 꿈이었다. 28마리의 소를 치던 그는 클린턴의 부름을 받아 1백50개국을 상대로 세계 최강국의 대외정책을 주무르는 백악관 보좌관이 된 것이다.그는 쇠똥이 묻은 장화를 신은채로 보도진에 둘러싸였다. 목장주가 공직을 택한 이유를 묻는 한 기자의 물음에 『요즘 쇠고기 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레이크의 대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땅부자가 세금을 떼고 나면 연수 5천만원도 채안되는 관직에 왜 들어가느냐는 기자의 질문과 불경기속에서는 안정된 월급쟁이가 낫지 않겠느냐는 미국식 실제주의 세태가 레이크의 농담속에 담겨있기도 하지만 공직자로서 뜻을 펼 기회가 왔을 때는 재산을 돌보지 않는다는 참뜻이 거기에 서려있다.

한미 두나라 각료들의 공개된 재산을 비교해보면 우리의 고위공직자의 재력이 단연 미국을 앞지른다.

미국장관중에는 텍사스 갑부로 이름난 로이드 벤슨 재무장관이 조금 돋보일뿐 백만장자급이 두세명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네 각료들은 거의 전원이 미국 기준의 백만장자급에 속한다. 국민소득면에서는 우리 국민이 미국 국민보다 4분의 1 밖에 안되지만 우리 국회의원의 재력은 미국 국회의원의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미국에서는 땅많은 사람을 별로 부자로 쳐주지 않는다. 땅덩이가 워낙 큰 나라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땅에 관심이 적다. 땅은 은행에서 돈빌릴 때 담보능력으로도 제구실을 못한다. 땅이나 집은 투기는 커녕 축재나 투자의 대상도 못된다. 환경규제가 심해 땅의 개발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돈버는 수단이 아니며 땅은 자연 그대로 이용하는 곳이지 투기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공직은 공복의 자리이지 치부의 자리가 아니다. 공직을 택할 때는 뜻을 펴느냐 돈을 버느냐 갈림길에 서야 한다. 청백리의 상징 카터 대통령도 땅콩농장으로 돈을 모은 기업가였지만 공직을 맡기위해 사업에서 손을 떼야했다. 외동딸을 백인만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넣고 싶었지만 공립학교를 택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명문대학 출신들에게 공직은 인기가 없다. 공직기피현상으로 관료사회의 자질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공직사회를 이끌 고위직만이라도 열정적이고 유능한 엘리트로 채우려한다. 「새로운 변경(뉴프런티어)」을 집권의 기치로 내세운 케네디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맥나라마 국방장관의 보수는 그가 포드 자동차에서 받던 중역 월급의 절반도 안되었다. 레이건 대통령때 슐츠 국무장관이나 와인버거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로 감봉을 당했던 셈이다. 그대신 임기동안 국가에 봉사하고 소신있게 자신의 뜻을 펴보자는 것 뿐이다.

한승주 외무장관은 요즘 끈질기게 나도는 김영삼·클린턴 정상회담 조기 개최설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이 진행된다면 장관직을 그만 둬야하는게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한다.

대통령은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그같이 소신껏 일할 사람을 원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제의를 받았을 때 『각하,저는 안됩니다. 장관 월급으로는 살림을 꾸려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을 준다해도 『세비만으로는 손자에게 집 한채씩 사줄 수 없습니다』라고 사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금배지는 못달아도 신명나는 사회를 위한 금메달 감은 되리라.

문민정부의 자정을 위한 뼈를 깎는 진통은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지만 여론재판은 좋지 않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부패의 추방이지 남의 재산목록을 구경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차례로 끝나는 소나기같은 여론의 매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청백리의 사도였던 카터 대통령도 지나친 공개주의(Government in Sunshine)를 앞세우다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공정한 게임을 굳히는 것이 개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로 재산실명제의 물꼬를 튼 마당에 이대로 돌이킬 수 없는 공정한 계임의 길로 제도적 정착을 가져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략적 차원의 물갈이의 수단이거나 역대 정권들이 거친대로 정권출범을 위한 대관 푸닥거리로 끝나고 말 것이다.

또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고위공직자는 용퇴의 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다수당 의회 지도자로 미국 의회 사상 최다선 의원의 한사람이었던 짐 라이트 하원의장이 몇년전 그와 관련된 독직사건이 터지자 의장직과 함께 정계은퇴한 사례는 어느 공직사회에도 교훈을 던져준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통일비용의 마련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첫번째 통독으로 거슬러 가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프러시아 공직자와 장교들의 비리추방 자결운동이 오늘의 강한 독일을 안겨다준 주춧돌이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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