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놀란다/금융실명제 시행 번갯불 작전 확실

◎사전 예고땐 시장교란 사태/“장관도 모르게 의표 찌른다”/전날 대통령 긴급담화… 해외도피 차단금융실명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전격실시」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어느날 갑자기 김영삼대통령이 긴급담화를 발표,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신규 금융거래는 반드시 실명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금융실명제 시행은 화폐개혁이나 사채동결(72년) 등과 같은 충격적인 조치여서 실시일정을 사전예고 하는 것은 실시를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다.

실명제의 구체적인 실시일정을 사전 예고할 경우 예고시점부터 실시시점 사이에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에 극도의 교란현상이 나타나고 자금의 해외도피 등 부작용으로 정상적인 경제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금리·환율변동 등 시장질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책은 발표 바로 직전까지 강력부인하는 연막작전을 펴다가 전격 시행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시로 5공과 6공 두차례에 걸쳐 금융실명제 실시준비 작업을 한 경제기획원·재무부 등 관계부처 실무자들도 『전격실시의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경우 실명제 실시는 불가능하다는게 두번의 실패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한 측근은 『YS의 정치스타일은 의표를 찌르는 정면돌파』라며 『모든 국민들이 개혁정책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실명제도 평소의 정치스타일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실명제 조기실시를 공약한 김 대통령이 지난달 초 경제팀에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일체 하지 말도록 언명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 대통령은 「3·19경제담화」에서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금융실명제를 빠른 시일안에 실시하겠다』며 공약실천의지만 강조했다.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그 이후 서울대 특강 등에서 실명제에 대한 질문을 수 없이 받았지만 김 대통령의 경제담화 내용을 소개하며 『더 이상 언급할 수 없다』고만 되풀이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경식부총리와 홍재형 재무부장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두고 봐라. 김 대통령은 실명제를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자당 당직자들도 실명제의 전격실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 고위당직자는 『실명제는 이미 핵심적인 정치현안이 되어 버렸다』며 『김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부총리 재무장관에게도 발표시기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결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데는 변함이 없다. 일차적으로 금융실명거래만 의무화시키고 금융소득 종합과세나 자금출처 문제 등은 당분간 유보한다는 것이다. 실명거래의무제가 제대로 정착되면 종합과세는 세제개편과 함께 언제라도 시행할 수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실명거래 의무화만 하더라도 혁명적인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선 음성정치자금 뇌물 사실 투기자금 등 검은 돈의 거래가 거의 완전하게 차단된다. 의사 변호사 고소득자의 탈세가 원천봉쇄되고 재벌의 변칙상속·증여 등 탈법행위가 아주 어려워진다.

실명제는 특히 가장 근본적인 부동산투기대책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거래를 의무화할 경우 모든 국민과 기업의 자금거래가 컴퓨터에 의해 자동추적되기 때문이다. 자금의 해외도피도 최소화할 수 있다. 기존의 가명예금을 인출할 경우 실명을 대야 하기 때문에 가명예금인출 즉시 그 이후의 자금추적이 가능하다. 또 가명예금을 인출하지 않을 경우 그 돈을 계속 해당금융기관에 남아있게 된다. 전격실시는 자금의 해외도피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실명제가 치밀한 「작전」에 의해 시행될 경우 경제적 충격도 줄일 수 있고 증시나 경제운용에 있어서도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명제는 의외로 금년안에 실시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집권 중반기 이후에 과실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실명제를 빨리 시행하는게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는 계산에서다.<이백만기자>

□실명제 전격실안

배경:실명제 사정예고시 금융 및 실물시장 혼란

시기:김 대통령집권 중반기 빠르면 금년내 가(예상)

발표: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방식으로 전격 발표

내용:금융실명거래만 의무화 종합과세는 유보

효과:검은 돈 거래차단,부동산투기 원천봉쇄 등

부작용:단기적 실물투기,증시 충격,중기자금난 등

보완책:중기특별대책,장기저리 무기명채 한시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