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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 「하니 암살」 회오리/만델라 이후 차세대 흑인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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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 「하니 암살」 회오리/만델라 이후 차세대 흑인지도자

입력
1993.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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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 격분 백인공격… 유혈충돌 조짐/인종차별 철폐 흑백협상 암운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10일 저명한 흑인 지도자가 극우파 백인에게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 한뒤 유혈폭동이 재연되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흑백협상에도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남아공 공산당 지도자이며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주요 멤버인 크리스 하니(50)가 지난 10일 요하네스버그 인근 북스버그의 자택에서 극우파 백인이 쏜 총탄을 맞고 피살됐다. 하니는 80년대 남아공 정부에 맞서 게릴라전을 주도한 투사이지만 91년 흑백간의 정치협상이 시작된 뒤 온건 노선을 유지,만델라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혀 「왕세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흑인지도자이다.

ANC의 청년층 사이에서 만델라를 능가하는 지지도를 누리며 백인정부와의 협상을 반대하고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이들을 설득해온 하니가 암살됨에 따라 ANC와 백인정부간의 정치협상도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암살된 직후 데 클네르크 대통령과 만델라는 국민들에게 진정을 호소했지만 격부한 흑인들이 백인들을 공격,유혈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11일 케이프타운에서는 두명의 백인이 승용차에 탄채 흑인들의 공격을 받아 불에 타 숨지는가 하면 소웨토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추도행진을 벌이던 흑인 1명이 사망했다.

하니를 암살한 범인은 이웃 백인주민의 신고로 즉각 경찰에 체포됐다. 야누츠 왈루스라는 범인은 지난 81년 공산주의를 피해 폴란드에서 이민 온 백인으로 보수당 소속 극우파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보도했다.

보수당 대변인은 즉각 왈루스가 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부인했다. 남아공당국은 왈루스가 흑백간의 정치협상을 깨뜨리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인종차별 정책을 펴온 남아공 정부에 대항해 ANC의 게릴라투쟁을 주도해온 하니는 지난 91년 27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남아공 흑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왔다. 만델라를 위시한 노령의 지도층이 지나치게 타협적이라고 여기는 ANC의 청년층은 무력투쟁 경력을 갖추고 논리정연한 공산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하니를 진정한 지도자로 추종할 정도였다. 그러나 극우파 백인들에게 하니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돼 극우파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목숨을 노려왔다.

국민학교 시절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하니는 고등학교때 ANC 청소년연맹에 가입했으며 포트하레 대학에서 정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제적됐다. 그 뒤 로즈대학에서 라틴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하며 셰익스피어와 키팅에 심취했던 그는 노조운동에 관여하다 대학졸업 직후인 62년 반공법에 걸려 1년반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곧이어 망명생활을 시작한 하니는 소련에서 게릴라교육을 받은 뒤 줄곧 백인 정부에 대한 무력항쟁에 참여했으며 74년에는 32세의 나이로 ANC의 초연소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87년부터는 게릴라조직의 총책임자로 임명돼 인근 레소토와 잠비아를 거점으로 백인정부에 대한 무력투쟁을 총지휘해 왔다. 91년의 ANC집행위원 선거에서는 최고득표를 해 만델라의 후계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인했다.<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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