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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의 무정/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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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의 무정/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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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경력이 만 15년을 넘는 사무관들이 정부부처에 제법 많다. 20대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공직생활을 시작한후 40이 넘도록 줄곧 5급 사무관이다. 동기들이 모두 그러므로 개인적 능력과는 상관없다. 얼마전만해도 빠르면 1급 차관보가 돼있을 나이에 승진이라는 말을 남의 나라 얘기처럼 잊어버리고 산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고등학생,대학생이 돼있다.지금까지 이와 같은 극심한 인사 적체에 대해 공직사회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한 탓이라고 여기며 일해온 40대 사무관들이 요즘 밥맛을 잃고 있고 일할 의욕을 상실한채 망연자실해 있다.

급성 의욕상실증을 유발한 병인은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공직자 사정이다. 우리 경제와 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정부의 의욕을 담고 있는 이 공직자 사정이 본래 의도한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직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다보니 발생한 부작용이다. 모든 공무원이 돈을 밝히며 「전을 먹는」 걸로 돼있다. 예외없이 고위공직자는 식관이고 하위직 공직자는 오리가 되는 판국이다.

집에서 부인들은 밤늦게 기죽은 모습으로 돌아온 중년 사무관에게 풀죽은 표정으로 『길 잘못 들었다』고 하소연한다. 박봉으론 도저히 생계를 꾸릴 수 없어 시집이나 친정에서 돈을 끌어다 쓸 몰염치의 세월이 참을 수 없는 자괴감으로 한거뻔에 되살아난다. 남편 친구의 가족들이 모두 고급승용차를 타고 집을 방문했다가 돌아가고 난후 『왜 우리 차만 소형이냐』고 묻는 자식에게 『공무원은 돈만 버는 직업이 아니야. 공무원이 가난해야 나라가 부자가 된단다』라고 말한 대목도 더없이 부끄럽다. 자식이 「공무원도 돈을 번다던데」라고 빤히 쳐다보는 것만 같다.

40대 사무관은 『부인의 이러한 호소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다 큰 아이의 어깨가 아버지 탓에 축 늘어져 보이는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자식만큼은 절대로 공무원을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새정부는 선거공약에서 공무원들에게도 「신바람」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고참사무관에게 신바람이란 승진이다. 이젠 승진이 아니어도 좋다. 비리없이 일하는 공무원을 위해 「돈먹는 공무원」이 특정부분에 대한 지칭임을 밝혀주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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