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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진실한 해결/김용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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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진실한 해결/김용옥(특별기고)

입력
1993.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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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한의과 대학생이다.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공부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왜냐? 11개나 되는 한의과대학이 모두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선 아무도 이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뭐가 문제냐?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약국이라는게 있다. 그런데 약국에는 흰가운을 입은 약사님들이 계시다. 이들과 연상되는 것은 박카스,아스피린,스트렙토마이신… 판도라상자같은 것이 수십개 꽂혀있는 한약장에서 구수한 할아버지가 지어주시던 첩약을 이들에게서 지어 받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이 서양약리를 배우신 약사님들께서 「한약조제」야말로 약사의 고유권한임을 포고하고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처방,조제,판매,약재유통업무까지 한약에 관한 모든 것이 서양약사들의 고유권한임을 전면적으로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 6공 말기의 권력누수현상이었다. 안필준 보사부장관은 퇴임 이틀전 강력한 약사님들의 등쌀에 못이겨 도장을 찍어버리고 말았다.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깨끗이 관리하여야 한다」라는 약사법 제11조 1항 7호를 삭제시키는 시행규칙이 3월5일 관보에 공고되었고 그것은 4월5일부로 집행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의 전국 4천여 학우들은 이의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지금 약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약사들은 한의사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려고 한다. 한의학이 정규대학의 체제속에 6년제 메디컬스쿨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하나뿐이다. 이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애써 이룩해온 독자적 장점을 살려나가도 모자르는 판에 죽일 수야! 국가가 면허를 준 8천여명의 한의사가 엄존하고 4천여명의 한의과 대학생이 모두 드높은 커트라인을 통과한 이 땅의 수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갑자기 「닭쫓던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방은 경험방일 뿐이며 그때 그때의 환자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증감이 있을 뿐이다. 학이라는 문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 학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은 수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어 학문으로 인정될 수 없다. 한의사들은 약사가 한방에 관한 모든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약취급의 상당수는 민간요법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한약의 방제에 학문적 특수기술을 요하는 것이 없다. 약사야말로 한약을 개선하여 소위 한약의 과학화의 기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대한약사회의 공식주장이다.

『우리 약사들은 한의사들이 우리가 한약을 다루는 것이 범법인 양 시민들을 오도시키는 불법행위에 비분강개한다. 전통의학이라는 미명아래 한약과 과학적 발전을 저해하는 그들의 아집과 전근대적 행위를 규탄한다. 대한약사회는 질병을 치료하는 한약을 전문직능인인 약사들로부터 탈취하고자하는 한의사들의 음해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이것은 지난 3월15일에 나온 서울특별시 약사회의 결의문이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리 언어가 무기력한 시대라 하지만 좀 너무하지 않은가?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집단행동의 궁극 모티브는 권력투쟁일 뿐이다. 보편적 가치관을 지향하는 철학을 하는 내가 어느 한편의 이권을 대변할 수는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진리며 정도며 정직이다. 국가권력체제속에 들어있지 않았던 사회적 행위가 체제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체제속 고지점령의 전쟁의 한 패턴인 이 약사법 개정 운운문제는 한의학의 사회적 진화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있지만,한의학도들의 입장에선 멸시당해온 전통을 여기까지 버거웁게 끌어왔는데 이제 피어날만하니깐 그 열매를 여기저기서 따잡수시려는 얌체족속들에 대한 서운함을 숨길 수가 없다. 전통적 약종상(한약업사)제도를 종료시킨 것도 한의사들의 실수에 속한다. 줄 것을 줄줄 알았다면 오늘 이렇게 약사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과대학에 약학대학이 있듯이,한의과대학에 한약학대학이 신설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존립하는 4년제 한약재료학과에 일정자격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한약사중에서 한약업체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은 한약학대학에 편입하거나 특수대학원 코스(2년제 이상)에 들어가 공부하여 자격을 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약사나 한의사나 같이 추구해야 할 것은 한의학 자체의 발전이요 이권의 강탈이 될 수는 없다. 나를 보라! 인체에 단한번 침을 놓는 과학적·철학적 실험을 하고 싶어 6년이라는 쓰라린 세월을 감내하며 이리 하숙방에서 하루하루 눈물겹게 살고 있지 아니한가! 최소한의 도덕성과 정도는 지켜야하지 않을까?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은 철회되어야 한다.<철학자·원광대 한의대 수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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