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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 참회/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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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 참회/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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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재산,즉 불법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산을 국가에 환수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건국이래 정부가 검은재산을 환수 또는 환수하려했던 기회가 네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반민족적인 친일파들을 처벌하기 위해 1948년 9월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된 때였다. 이법은 한일합방에 적극 협력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과 문서에 조인한자,일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자,독립운동자와 가족을 살상·박해한자는 사형에서 5년이상의 징역과 재산의 전부 또는 반이상을 몰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승만정부가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하여 손도 대지 못했다.

두번째는 4·19 학생혁명후 허정 과도정부가 부정축재 환수를 추진하다가 중단했고 장면정권이 인계,부정축재한 재벌들에게 자진 환수를 종용했지만 아무런 진척도 보지 못했다. 허·장 두정부는 당사자들의 양식에 호소한 점이 특징이었다.

세번째는 5·16후 군정때였다. 당시 부정부패 일소를 내세웠던 군사정부는 61년 6월14일 최고회의서 전문 29조 부칙으로 된 부정축재처리법을 통과,53년 7월1일부터 5·16 전까지 부정축재한 공무원 군인 실업인 학원경영자를 그 대상으로 했다. 국공유 재산의 부정취득 및 국세포탈자 등에게 환수액을 통고했으나 근 3년5개월간 소리만 요란했지 재벌들의 지연작전으로 큰 성과가 없었다.

네번째는 80년 신군부가 득세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였다. 신군부는 김종필 이후락 정해영 등 여야 중진 등을 권력비리혐의로 강제연행,재산을 국가에 자진 헌납케 했고 이렇게해서 강제환수된 자금중 4백5억원으로 농어촌후계자 양성기금을 마련,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27일 김영삼대통령의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차관급,여야의원 등 4백80여명이 재산을 공개,40여일동안 엄청난 부정축재에 대한 논란으로 나라전체를 들끓게 했다. 그동안 편안하게 지냈던 공직자들에게 공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요,지진과 태풍을 만난 격으로 여러 사람이 「부도덕」이란 낙인이 찍혀 자리를 물러나고 특히 전·현직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등이 정계를 은퇴,탈당했지만 과연 이것으로 첫 재산공개의 뒤처리가 매듭된 것으로 봐야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공개가 공직자의 몸가짐과 족적은 깨끗해야 하는 것 등 공직사회는 물론 각계에 주는 교훈과 영향은 막중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 정도로 처리를 끝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적어도 오는 하반기부터 임명,선출되는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 벌써부터 여야가 공직자윤리법을 크게 고쳐 5,6급 공무원까지 공개하고 엄격히 실사하여 불법과 탈세 및 직권이용 등이 드러났을 경우 해임,또는 사퇴는 물론 형사고발까지 한다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공개로 드러난 상당수 부정축재의혹 인사들이다. 치부가 노출되고 공직사퇴 등도 본인에겐 치명적이나 부정하게 긁어모은 재산을 계속 소유토록 해야하는가 하는 점이다. 신문사로 연일 빗발치는 독자들의 전화나 편지는 국가에서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법치국가인 만큼 어림도 없다. 국고에 강제환수하려면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거나 또 소급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소급법은 헌법에서 엄연히 금지하고 있다.

이들은 워낙 법을 악용,온갖 신기와 묘비방을 동원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재산소유는 거의 완벽하게 되어있다. 국토이용관리법,농지보전이용법,부동산등기법,도시계획법 등 관계법에 의한 처벌도 공소시효가 3년으로 일찌감치 지나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국가에서 여론에 의한 압력­여론재판식으로 헌납을 강요해서는 결코 안된다. 본인들의 양식에 의한 결심으로 상당부분의 부동산을 자진 헌납 또는 당초의 매입가격으로 정부에 넘기는 방법이 바람직하나 요즘 분위기로는 이 또한 기대난망이다.

사실 부정하게 형성한 재산의 처리도 그렇지만 가장 국민을 개탄·분노케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일말의 반성이나 뉘우침은 커녕 오히려 「억울하다」 「나는 떳떳하다」 「법을 어긴 적이 없다」 「왜 나만 당해야 하는가」라고 반발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이 이 땅의 공인들이 지닌 의식수준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러니 예나 이제나 국민들이 대부분의 공직자들을 불신하고 사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민자당 상무위원회 치사에서 『재산공개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참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공인의 도덕적 불감증을 지적한 것은 매우 음미할만하다 하겠다.

이제 회개는 고사하고 국민을 울려가며 모은 검은재산을 계속 움켜쥐고 권력과 자리를 유지하려는 부정축재꾼들은 정계 공직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정계는 부정축재꾼들의 놀이터나 보호막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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