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여러분은 나를 성가시게 따라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회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멀지않아 당신들은 내가 보고싶어질 것입니다』 1962년 11월7일 리처드 닉슨 전 미 부통령(당시)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2차대전이래 미국의 역대 정·부통령중 기자들과 가장 사이가 나빴던 리처드 닉슨이 1960년 대선때 케네디에게 석패한데 이어 62년 캘리포니아주 지사선거서도 E G 브라운 현 지사에게 진뒤 기자에게 쏘아붙인 것이다. ◆닉슨이 부통령 재임 때에 이어 13년만인 66년 8월 야인으로 서울에 왔을 때 변변한 영접객도 없이 쓸쓸하게 입국했다. 정부는 형식상 박정희대통령과 정일권총리가 만나 잠시 환담하는 것으로 그쳤다. 따뜻한 오·만찬 대접도 못박은 닉슨은 이 때의 「냉대」를 가슴에 묻어두었다. ◆닉슨은 오뚝이였다. 3년뒤 그가 험프리를 누르고 뜻밖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군원 등 막대한 방위부담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정희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닉슨은 장소를 백악관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로 하는 「보답」(?)을 했고 회담 분위기도 『냉냉했었다』는 것이 당시 고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닉슨이 「아시아문제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명분아래 주한미군 1개사단 철수를 강행한 것은 잘 알려진대로다.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 나들이길에 방한,24시간 머물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8일 낮 김영삼대통령이 청와대서 오찬을 베풀며 북한 핵저지문제를 논의한 것은 당연하다해도 8순 노인이 아침에는 호텔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조찬을 나누고 하오에는 연희동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환담한 것은 『어색했다』는 얘기다. 손님의 고령을 감안,두 전 대통령이 나란히 조찬 또는 환담을 했어야하지 않았을까. 정치의 고수였던 닉슨이 합석못하는 한국의 두 전 대통령을 따로따로 만나보고 어떤 심회를 가졌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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