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도에 과감한 메스/시장경제원리 본격도입/불합리·낙후성 탈피에 역점/정책적 잣대는 될수록 배제금융산업발전심의회 산하 금융제도개편연구소위원회(위원장 박영철 금융연구원장)가 그동안의 연구결과로 내놓은 첫 작품은 금융시장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원칙을 명백히 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산업발전 과정에서 「실물경제를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절대원칙에 밀려 자유로운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책적 잣대에 의해 굴절을 겪은 금융을 이제는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크게 봐서 금리자유화 정책금융 통화신용정책 등 3가지 줄기다. 나머지 절반인 업무영역 금융기관 건전성 소유구조 등 3가지는 이달말에 추가로 발표돼 금발심에서 토의에 부쳐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6월말까지 제도개편안이 확정되면 신경제 5개년계획에 포함돼 금융부문의 대수술이 실행되는 것이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의 개편이 금융산업 개편이 아니라 금융제도 개편이라는 사실이다. 산업의 골격을 마구 바꾸는데 주안점을 두기보다 제도상의 구태와 불합리,낙후성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개편의 추진방식으로 볼 때 학계와 업계 등 민간의 의견이 연구를 통해 먼저 초안으로 제기됐다는 점이 전과 다르다. 종전에는 정부가 초안을 내놓으면 금발심 위원들이 통과의례 정도로 논의하는게 고작이었다. 이번에는 민간에서 제시한 방안이 금발심에서 확정되면 정부가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막판에 가서 정책적 선택정도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원리에 의해 금융이 가동되도록 하겠다는 의욕은 정책금융의 축소·폐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지난해말 현재 정책금융 65조4천80억원. 이중에서 예금은행의 정책금융은 51조2백80억원으로 전체대출금의 49.6%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를 위해 특정부문에 금리나 기간 면에서 일반자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공급됐다.
이것이 그동안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게 사실이지만 각종 특혜시비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한정된 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오히려 가로막는 역기능까지 노출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산업정책적 정책금융을 궁극적으로 완전히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수출산업 등 특정산업을 지원하는 산업별 지원체제는 없애되 기술 및 인력개발,환경오염 방지 등을 위한 기능별 지원체제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다. 아울러 농어촌 지원자금이나 주택자금 등 소득보조적인 정책자금은 폐지할 수는 없으므로 재정에서 떠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덩치큰 대기업들의 은행자금 독점을 막기 위한 여신관리제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시장원리가 강조되다 보니 은행에서 돈을 빌려쓸 때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높은 금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있다. 중소기업쪽이 쓰러질 위험성이 많으므로 금리가 비싸야 한다는 논리다. 쓰러질 위험성이 높아 비싼 금리의 자금을 쓰면 금융비용이 높아 쓰러질 위험성이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더구나 대기업들은 성장과정에서 싼 정책자금으로 커 놓고,이제와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똑같은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금리자유화 부문에서는 이미 마련돼 있는 자유화계획을 보완하는 정도의 손질만 했다. 아울러 자유화 이후의 금리안정을 매우 중시,많은 대책들을 제시한 게 특징적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