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실업학교(고교 교육을 살리자:9)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실업학교(고교 교육을 살리자:9)

입력
1993.04.09 00:00
0 0

◎인문고중심 정책 “기능인양성 표류”/정부지원 인색… 실습기재 태부족/상·공·농교등 전문교육 죄초 위기/학생들도 “사회서 승진·봉급 차별” 입학꺼려실업계 고교교육이 표류하고 있다. 우수한 기능인력을 배출,60년대이후 우리나라 산업화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실업계고교 직업교육이 입시위주 교육에 밀려 고사지경이다.

학력인플레로 실업계고교 지원자가 날로 줄어들면서 폐교위기를 맞고있는 실업계고교도 많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제자리 걸음이어서 학습기자재라고는 70년대에 구입한 「고물」이 대부분이고 나머지 고장이 잦아 이용하기 어렵다.

이때문에 졸업과 동시 생산라인에 투입할 수 있는 기능인을 배출하는 실업계고교 교육의 목표인 완성교육은 실종된 상태나 다름없다.

학생들로부터도,교육당국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있는 실업계고교 교육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현재 공고 상고 농고 수산고 해양고 종합고 등 우리나라 실업계고교는 모두 6백77개교이다. 이들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은 92년 현재 81만2천4백92명으로 전체 고교의 37.8%이다.

실업교육이 고교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작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관성 없는 정책과 인문고 중심교육에 밀려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실업교육정책의 표류로 인해 실업고교들이 겪는 애로는 거의 비슷하다. 학력간 임금격차로 지원자는 해마다 줄고 있다. 절대부족한 실험실습 시설에다 ▲자격증을 따기위해 따로 학원에 다녀야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부담 ▲기능인 양성목적과 동떨어진 교육과정과 교육현실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공업계 고교부터 짚어보자. 서울 K공고의 선반실습실. 이곳에는 70년대초 국내 굴지업체에서 생산된 선반 16대가 고장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 학교 김모교사는 『그나마 실습에 쓰이는 선반들도 고장이 잦아 하루 1대이상은 수업 시작전 손을 봐야하는 실정』이라며 『70년대의 낡은 실습기자재로 산업현장의 시설과 동떨어진 실습을 하고 있는게 2000년대의 산업기술 주역을 키운다는 우리 공업교육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공업계 고교교육이 내실있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험실습시설이 우선적으로 갖추어져야 하는데도 전국 공업계 고교의 실험실습 기자재 확보율과 실험실습실 확보율은 평균 60%에도 못미친다.

서울 K공고의 이모교사(38)는 『실습기자재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실습시간의 25%정도는 교과서로 때웁니다. 그나마 있는 실습기자재도 70년대에 설치한 것이어서 수리를 하느라 수업시간을 다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 한대 구입하는데만 1천만원이 듭니다. 할수없이 70년대 기계로 70년대식 실습을 하는 것이 공고의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또 커다란 실습실에 조그만 환풍기 한대가 고작이어서 납냄새가 숨을 콱콱 막히게 하고 방음장치가 안된 실습실은 드릴 등 공구가 동시에 작동할때면 귀를 찢는 듯해 실습시간마다 정부가 실업계 교육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 일선교사는 말한다. 교육과정에 규정된 실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규정된 시간마저 실습으로 활용되지 않아 기능을 익히기 위해서는 기술학원에 따로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실습기자재의 절대부족으로 공업계 고교생들은 절삭공구 등을 개인이 구입해야 하는 사교육비 부담까지 안고있다.

이런 어려운 현실에서 공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직장에서 조차 환영을 받지 모하고 있다. 최근들어 중소기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요즘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간신히 사람하나 얻어 현장에 배치하면 해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공구 이름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불만섞인 이야기를 흔히 한다.

즉 실업계학교를 졸업한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막상 산업현장에서 일을 맡겨 보면 기대만큼 설비를 다루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교육부의 기능인력 양성제도에 불만을 가진 몇몇 대기업체들은 최근들어 교육기관을 따로 설립운영하거나 교육부로부터 독립된 기능인력양성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Y공고의 한 교사는 『공고의 교육목적은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성교육(종국교육)을 통해 피라미드식의 인력구조중 바닥에서 중견까지의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이라며 『공고의 평가기준은 자격증을 얼마나 많이 따느냐와 기능경기 대회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입상시키느냐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상고가 취업이 잘되는 학교로 통했다. 상고만 졸업하면 은행취업문은 열려있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국제금융,외환관련 업무가 늘어나 대학 영문학과 출신 은행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상범,민법 등 폭넓게 벌률지식이 요구돼 법학과 출신 은행원들도 늘어나는 등 주산,부기,타자 등 상고 졸업생들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여자상고 출신들은 나은 편이다. 아직도 은행이나 증권 등 제2금융권에서는 창구서비스 등 여상출신들의 고유영역이 있어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그나마 교육도 활성화돼 있다.

기업체내에서 문서가 사라지고 컴퓨터를 통한 업무처리가 일반화되는 등 사무자동화 추세에 따라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나 로터스 등 컴퓨터를 다룰줄 아는 인재를 원하고 있지만 기존 상과보다는 정보처리과가 인기가 높은데 고가의 컴퓨터교재를 학교재원만으로는 구입하기가 어려워 학생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 서울의 I여상을 졸업하고 모기업체에 취직한 김모양(20)은 『정보처리과 학생들은 학교내 슬습만으로는 크게 부족해 여름방학 등을 이용해 컴퓨터학원에 등록,따로 공부한다며 자신도 학원에 등록해 수강했다』고 학교교육의 부족함을 토로했다.

이에 반해 명문으로 알려진 S여상은 컴퓨터교실 5개에 3백30여대의 16비트 컴퓨터를 실치,실습을 하는 등 컴퓨터,팩시밀리,워드 전용기,텔렉스 등 사무자동화 기기를 갖춘 대형 종합실습실을 갖추고 있어 타학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 학교의 관계자들도 벌써부터 대체수명이 5년 안팎인 컴퓨터의 교체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S여상의 경우 해마다 졸업생수 3배정도의 추천서가 들어와 1백% 취업을 하고 있지만 대기업사무직,은행,증권사 등에 취업하는 졸업생은 전체의 30%정도이며 나머지 70%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취업,예전과는 사뭇 사정이 다르다.

실업계고교의 교육이 취업교육에서 이탈,진학교육으로 변질되는 추세도 문제다.

「실업고생 모셔오기 경쟁」 「고졸시대가 온다」라는 기사가 매년 취업시즌이 되면 사회면 머리기사로 오르고 있다.

심지어 99.9%라는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공고의 경우 기업체에선 아예 공고나 직업훈련원 재학중에 장학금 등을 지급해 미리 인력을 확보하는 「입도선매」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1백% 취업은 허울좋은 수치에 불과하다. 실업계 고교생들 사이에선 대학진학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공업계 고교에는 구인의뢰가 쇄도하고 1백% 가까운 취업이 보장되는데도 졸업후 취업보다는 일반대학,전문대 등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따라 일선공고에서는 취업지도,실과교습과 함께 보충수업 등 진학지도를 병행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있다.

실업계 고교생들이 진학을 원하는 가장 큰 원인은 대졸자와 임금격차가 크게 때문이다.

농고의 경우 더욱 허탈하다. 농고졸업자 가운데 영농정착자는 20% 정도에 그치고 있고 농업관련 산업에 취업한 졸업자를 합해도 전공분야 취업자는 전체의 25% 수준을 밑도는 형편이다.

특히 농촌지도소나 농업진흥원,농협 등 관련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때문에 졸업생 대부분이 전혀 정공과 관계없는 월급여 15만∼20만원 수준의 단순생산직 근로자나 일용근로자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런 실업계 고교졸업자들의 전공과 무관한 단순종사직에 대한 취업 등이 실고생 1백% 취업의 신화를 낳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대학입시위주의 이같은 교육 현실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실업계교육은 인문고와 실업고의 비율을 50대50으로 조정한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실업계교사들은 『학력간 임금격차는 87년이후 노동운동이 활발한 대기업 중심으로 차츰 좁혀지고 있지만 고졸생산직은 아직까지도 근무연한에 비해 승진의 기회가 적고 생산직을 경시하는 풍조때문에 실업고의 지원미달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문고생 직업훈련 「아현학교」/3학년중 취업희망자 받아/11개과 개설… 1년간 교육

실업계고교가 위축되고 있는 반면 인문고교생중 취업희만자를 뽑아 직업교육을 시키는 직업학교는 갈수록 인기를 끌어 대조적이다.

이중 서울 마포구 아현동 671의1 아현 직업학교는 대학진학을 포기했거나 졸업후 직업을 갖기 원하는 서울시내 1백28개 인문계고교 3학년생들중 희망자를 받아 전자·정보처리·사무자동화·광고디자인·스크린인쇄 등 실기위주의 전문기능교육을 실시,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게 해준다.

아현직업학교는 90년 3월 인문고 3년생중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과정의 위탁 직업교육을 하기위해 서울 직업학교·종로산업학교와 함께 문을 열었다. 이후 지금까지 1회 1천2백명,2회 1천3백명,3회 1천3백명 등 모두 3천8백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현재 이 학교에선 정보처리·전기기계 등 11개과에 학급당 정원 45명으로 주간 26학급,야간 26학급 등 52학급 2천3백명이 위탁교육을 받고있다.

개교 4년째인 이 학교는 지난해 졸업생 1천3백명중 96%가 유망 중소기업체에 취업했으며 95%이상이 2급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해 일찌감치 직업을 갖게됐다.

이학교 백승태교장(50)은 『위탁교육을 받기전만해도 학교에서 열등감과 소외감 때문에 기가 죽었던 학생들이 입학후 생기가 넘친다』며 『뒤늦게나마 자신의 적성을 찾게된 이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 각자 다니는 학교에 나가 정규수업을 받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익히고 있다.

현재 아현직업학교에는 80명의 교사가 있으며 이중 실기지도교사 13명이 의욕적으로 실기교육을 실시,1년안에 기능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자동차 등의 실습장비를 기업체나 경제단체 등에서 기증받아 사용해왔지만 최근에는 이같은 지원이 끊겨 실습기자재 구입에다소 애로를 겪고 있다.

이 학교는 올해 50% 정도 늘어난 지원자 모두를 받아들이기에는 시설이 부족해 성적과 적성 등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상오와 하오로 나눠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신상순기자(사진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