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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패와 재산/최상룡 고대 교수·평화연구소장(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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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패와 재산/최상룡 고대 교수·평화연구소장(한국논단)

입력
199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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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동안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일련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1980년대를 민주화의 시대라 불렀다. 남미 여러나라의 민주화에서 시작하여 사회주의 제국의 개방·좌절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폭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으며,한국도 80년대 후반부터 이 역사적 흐름에 적응해왔다. 그런데 20세기를 마무리하는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는 뚜렷한 움직임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반부패의 시대정신이 아닌가 싶다.전후 반세기동안의 경직된 이데올로기 대립과 정경유착의 구조속에서 때로는 묵인되고 때로는 은폐되어온 부정부패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G7 국가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소문대로 부패문제로 나라가 온통 난장판이고 오랜 정치 전통처럼 되었던 일본의 정경유착의 고리도 점차 그 베일에 벗겨지고 있으며 프랑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부패추방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는 가운데 제3세계 여러나라도 산업화가 진전되고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멀지 않아 반부패운동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의 반부패 캠페인은 김영삼정부의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시작하여 지금 우리는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둘러싸고 국민의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의미있는 홍역을 앓고 있다. 가진 것 없이 생활전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많은 서민대중은 분노하고 허탈해하면서도 한가닥 카타르시스를 즐기고 있고 누가봐도 허용의 한도를 넘는 파렴치한 공직자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재산증식의 욕구가 결코 적지 않으나 능력의 한계로 돈을 벌지 못했거나 저축으로 노후의 휴식처 하나쯤 마련하려던 중산층은 정부의 재산공개 정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일말의 심리적 위축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재산욕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한번쯤 생각해봄 직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새삼스럽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를 잠깐 들먹여 보려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재산에 대한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두 철인인 인간의 소유욕에 대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놀랍게도 지도자는 재산과 함께 처와 자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을 즐기면서 가족중심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현대인의 감각에는 황당무계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플라톤이 공직자의 부패의 뿌리를 재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그에 의하면 지도자는 재산의 유혹에서 해방되어야만이 국사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오늘의 상황에 다 맞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재산에 대한 탐욕이 정치부패를 낳는다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호소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유도한 정부의 초법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승 플라톤 밑에서 20년을 배운 위대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도자의 공유제를 주장한 플라톤의 견해를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도자의 사적동기를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나 재산의 공유는 인간과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스승 플라톤을 향하여 인간성의 이기적 본능에 대한 처방이 틀렸다고 꼬집었다. 인간의 본원적 소유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제도화함으로써 인간의 자기 실현을 위한 귀중한 동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생각은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주의로 이어졌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원형을 보게 된다. 이 두 철인은 재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명백한 대립을 보이고 있으나 다같이 인간성에 내재하고 있는 천사적 요소와 악마적 요소를 꿰뚫어 보면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제시했다. 우리가 만약 오늘의 현실에서 이 두 철인의 경구를 받아들인다면 그들로부터 재산소유의 역설에 대한 깊은 사려와 예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가지 일을 같은 비중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편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공직자의 부패가 대부분 재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공직기간에 부동산 투기의혹이 현저한 자는 다시는 공직에 나설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며 조속히 현실에 맞는 공직자윤리법을 마련하여 그것을 엄정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재산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는 가계나 기업으로부터는 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재산에 대한 욕구는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공직자 부패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는 깨끗한 민주정부하에서는 삶에 활력을 줄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발전에 강력한 성취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재산과 관련된 공직자의부패를 척결한다는 것과 평균적인 국민의 재산욕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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