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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고비마다 막후 조정/청와대­당정연결/김덕룡 정무1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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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고비마다 막후 조정/청와대­당정연결/김덕룡 정무1장관

입력
199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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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신중론 재우고 강행/대통령과 수시통화·정책보고김덕룡 정무장관의 하루해는 무척 짧다. 새벽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단 몇분도 여백이 없다.

새벽 6시에 그의 집에 전화하면 어김없이 『20분전에 출타했다』는 대답만을 들을 뿐이다. 밤 12시에 방문해도 그를 만나기가 어렵다. 새벽 1시가 다돼야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아는 한 민주계 의원은 『김 장관과 함께 있으면 조바심마저 느껴진다』고 말한다. 곧 약속 때문에 일어설 것 같고 수시로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행태는 71년 YS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면서 생겨났다. 탄압과 주시의 대상인 야당 지도자를 보필하다보니,자신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게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분주함은 그대로지만 그 색깔은 달라졌다. 과거처럼 YS 밀명을 갖고 음습한 뒷골목을 잠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대로를 당당하게 걷는다.

탄압받던 시절 행여 남의 눈에 띌세라 얼른 손을 감싸쥐고는 도망치던 지역주민도 더이상 떠나지 않는다. 먼 발치서 눈짓으로 성원을 보내던 지지자들도 이제는 떳떳하게 나선다.

여명의 우면산을 오를 때건,국회의사당앞 목욕탕에서 등목을 할때건 그를 반기는 「보통사람」들의 말과 표정에는 주저함이 없다.

이 모든 변화가 그가 「모시던」 야당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데서 비롯된 것이다. 강산이 두번 바뀌고 몇년이 더 지나도록 정치인 김덕룡이라는 이름 석자 대신 YS 비서로 통했기에,그에게는 자신과 김영삼대통령 그리고 개혁정책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화려하게 바뀐 현재는 그가 청·장년을 김 대통령에게 바친 결과이자 「YS의 분신」으로 불리는 이유라할 수 있다.

『최고통치자와의 지근거리에서 힘이 나온다』는 원론을 원용하다면,수시로 대통령의 뜻을 받아 당과 정부에 전하는 그는 실세임에 분명하다. 정무장관실에 가보면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드러난다. 정무장관실 전화는 청와대와의 「핫라인」을 제외하고는 대개 『뚜뚜뚜』하는 통화중 신호를 내고 있다.

비서실에는 면담 희망자들로 북적거린다. 얼마전에는 전직 장관이 10분이상 대기해야 하기도 했다. 정무장관실 직원들은 「6공의 황태자」로 통하던 박철언의원이 정무장관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외형만 그런게 아니다. 내실 역시 실세답다. 민자당에 재산공개의 신중론이 고개를 들던 3월17일 그는 아침 일찌 최형우 사무총장과 만났다. 그 직후 열린 고위당직자 회의는 「재산공개 예정대로 실시」를 결정했다.

재산공개후 물의의원들이 하나 둘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탈당하는 와중에서도 『내발로는 당을 못나간다』는 정동호의원이 결국 2일 탈당을 발표했다.

이날 아침 정 의원은 김 장관과 전화통화를 했었다. 김 장관의 전화가 정 의원을 위로하는 내용이었는지 「상부의 뜻」을 전하는 최후통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김 장관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치인 김덕룡의 주변에서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 그의 능력과 힘을 인정하는 의원들도 개인적 친밀도로 화제가 넘어가면 입을 다물고 만다. 꼭 싫어서가 아니라 만나서 흉금을 털어 놓을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계 의원들중에서도 『어이,덕룡이』라며 어깨를 두드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듯 싶다.

물론 한완상 통일부총리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 김정남 교육문화수석 이인제 노동장관,그리고 야당의 한광옥 권노갑 이부영 최고위원 등과도 끈끈한 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범위는 정치인으로서는 좁은 편이다. 더구나 실세라고 불리는 거물급에게는 다소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김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인 최 총장의 성산동 집에 동료정치인,기자들이 몰리는 것과 비교하면 김 장관의 방배동 집은 적막강산이다. 한마디로 대중적 이미지와 소탈함이 적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이런 지적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그가 펴낸 「열린 세상,열린 정치」라는 저서에는 『지금까지는 익명의 삶이었다. 내 이름 석자를 찾은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YS 대통령만들기」에 매진하자면 자신을 버리는게 당연하고 그러다보니 폐쇄적인 인상을 갖게 됐다는 변이었다.

김 장관은 『가슴을 터놓을 수 있는 지인을 만든다는 것은 정치인 이전에 인간의 도리』라며 향후의 변신을 기약했다. 그러나 그가 세를 불리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인터뷰에서 밝힌 몇마디에 압축돼있다.

『지금은 개혁정치가 성공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차세대감은 그 결과의 산물이지 욕심이나 의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배들이 정정한 마당에…』

그는 여전히 김 대통령을 위해 뛰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익명의 정치인」이 아니고 「정무장관 김덕룡」이라는 이름 석자를 걸고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오늘도 짬이 없고 내일도 여유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우면산으로의 새벽등산을 약으로 삼고 있다. 산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주민의 한마디 한마디… 하산후 해장국집에서 어울리는 민심을 일종의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주군」이 강조했던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경구를 되새기면서.<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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