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에 발목잡힌 “통일 기관차”/이인모씨 송환·경제인 방북제의등/의욕적 접근불구 북한 반응은 냉담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출신 한완상 통일부총리의 취임 일성은 의욕적이었다.
한 부총리는 『지금까지 추상적으로 와닿던 통일이 역사적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 앞으로 통일원이 남북통일에 있어 정책적인 기관차 역할을 분명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뒤인 지난 2일 상오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를 갖기 위해 종합청사 4층의 접견실에 나타난 「통일의 기관차」 한 통일부총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기전에 민족복리를 위한 남북대화는 재개될 수 없다. 북한의 핵위협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는 세계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자위적 대응조치」를 장담하고 있는 점을 통일원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자세가 민족내부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소 굳고 진지한 표정의 한 부총리는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잇따라 토로했다.
북한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 남북대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부정적 반응을 보일 때는 오히려 그의 「진보와 전향성」의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가 밝힌 긍정적 언급이라곤 『15일의 김일성주석 생일행사와 20일의 팀스피리트훈련 장비철수 등을 계기로 북측으로부터 이인모씨 송환에 대한 「반응」이 오지 않겠느냐』는 희미한 「기대」 정도였다.
한달여의 「제도권 통일일꾼」 생활동안 한 부총리가 남북한관계의 냉엄한 현실,북측의 비상식적인 정책결정 등에 단단히 「덴 듯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상과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의 통일·화합·행복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확고하다면 핵문제 등 현안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던 그의 취임당시 발언은 현실의 풍파에 많이 마모됐지 않았느냐는 평가를 낳게 하고 있다.
이같은 평가는 한 부총리가 지휘하고 있는 통일원 직원들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대체로 『부총리가 취임당시보다 많이 신중해진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당초 통일정책은 정부의 정책분야중 가장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야의 진보성향 학자가 통일정책 총수가 되자 틀림없이 많은 「뉴스」거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측됐었다. 더구나 한 부총리는 김영삼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행정부내의 실세라는 설이 유력해서 통일원의 권한강화를 점치는 의견도 많았었다.
그 추측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한 부총리는 업무파악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한 부총리는 취임과 더불어 통일정책의 방향으로 민족복리·공존공영·국민적 합의 등 3개 원칙을 천명했다. 과거의 냉전적 대북관이 많이 탈색된 내용이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미전향 장기수출신 이인모씨의 송환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설이 정부 주변에 나돌더니 곧 사실로 판명됐다.
통일원의 실무진 사이에는 경제인들의 방북이 조만간 허용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개진됐다.
「허울」뿐이라고 통일원 관계자들이 자조하곤 했던 통일관계 장관회의의 모습도 전혀 달라졌다. 새정부 출범이후 첫 회의에 각 부처 장관들이 빠짐없이 참석함으로써 통일원 직원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한 부총리는 더 나아가 안기부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부내 실력자를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 「평회원」으로 만들었다.
「통일정책결정 과정의 공개화」라는 취지로 새로 만들어진 통일관계장관 전략회의가 그것이다. 실세 통일부총리란 평가가 나올법 했다.
이씨 송환이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자 곧이어 납북어부 가족,고령 이산가족 등을 직접 지방으로 방문,위로하는 정치행보를 「양념」으로 곁들이기도 했다.
통일정책 결정에 있어서의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한 노력도 가시화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달 31일의 통일원 통일정책평가위원 선정. 여기에는 방북 취재관련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했던 대표적 반체제 학자 이영희 한양대 교수가 「관변조직」의 구성원으로 참여,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이 밖에도 실향민 대표,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의 면담 등도 잇따라 가졌다.
그러나 이같은 한 부총리의 의욕적인 행보는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적어도 북한을 상대로한 분야에선 발목이 잡혀버린 형국이다. 「민족의 복리」 「공존공영」으로 미소를 보냈지만 상대는 매정하게 뒤통수를 친 상황이다. 한 부총리에게 고민이 있다면 바로 이점일 것이다.<신효섭기자>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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