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개혁 지원규모 초점/미 옐친 권좌에 회의적/많아야 5억불선 예상지난 91년 9월.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리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아직 미 정가에 팽배하고 있을 때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에 오면서 클린턴 후보를 만날 계획을 방문일정에 넣어달라고 고집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양국 우호협정에 조인한후 아칸소주 리틀 록으로 빌 클린턴을 만나러 가게 돼있었다. 새 협정에 대한 양국 대통령의 조인식이 끝난후 백악관 이스트 룸에서 열린 양국 대통령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미국기자가 옐친에게 『왜 클린턴을 만나려 하는가』라고 물었다.
옐친은 힐끗 부시의 얼굴을 쳐다본뒤 그의 얼굴에서 밝은 표정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은듯 『나는 미국 국민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만일 미국인들이 현직 대통령 아닌 민주당의 젊은 클린턴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는다해도 자기로서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선거기간내내 부시 대통령을 지지해 클린턴 정부와 처음엔 사이가 서먹서먹했던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에 비하면 옐친은 훨씬 선견지명까지 갖춘 처신을 선거기간중에 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옐친이 클린턴을 만나러 오는 밴쿠버 길은 나름대로는 상당한 기대가 내포돼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클린턴 대통령도 옐친에 대해서는 줄곧 긍정적인 발언만 해왔다.
그는 이례적인 옐친 지지표시를 이번 밴쿠버 회담에도 동원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클린턴이 심정적으로 아무리 옐친을 지지하고 그를 돕고자 해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몇가지 현실적 제약을 갖고 있어 이번 회담이 옐친에게나 클린턴에게 다같이 확실한 성공을 가져다줄지는 극히 의문시 된다.
첫째,미국내에서도 옐친과 그가 이끄는 러시아에 과연 얼마만큼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3월 한달동안 러시아 지원의 일차적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무려 네차레나 의회에 나가 증언했는데 이 때마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 과연 러시아와 옐친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
상원 외교위에서는 미국의 러시아 지원의 일차적 목적은 핵무기를 통제하는 일인데 옐친의 민주화 지원이 과연 어느정도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 등에 흩어져 있는 핵무기를 효율적으로 통제케하겠느냐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제기됐다. 상원 세출위 국제관계소위원회의 패트릭 레히 위원장은 옐친의 권좌가 위태로운 입장이라면 지금까지 미국이 구상해왔던 러시아 원조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손질해야 한다면서 옐친의 몰락이 반드시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클린턴 자신이 러시아에 대해 확고한 정책방향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기본과제는 재정적자 축소,국내 직업창출에 있다. 그는 당초부터 국내 정치문제를 갖고 대통령에 도전한 사람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원조가 미국의 재정적자 해소와 직업창출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클린턴은 결국 소련이 다시 미국의 초적대국으로만 돌아오지 않도록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돼있는 것이다.
클린턴은 지난달 28일 한 TV 인터뷰에서 루츠코이 러시아 부통령도 결국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만일 러시아 국민이 옐친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민선부통령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클린턴은 이번 정상회담중 기껏해야 최고 5억달러 상당의 대러시아 경제지원을 선물로 줄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인플레 억제와 다급한 민간경제의 회복을 위해 적어도 2백억달러는 필요한 입장이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직접원조를 발표한뒤 오는 6월 동경에서 있을 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냉전시대의 미소 정상회담은 언제나 세계 긴장해소라는 엄청난 기대속에 진행돼왔다. 하지만 러시아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얼마만큼의 경제지원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진 이번 정상회담은 정치적 측면은 요란하게 홍보되겠지만 내면은 옐친을 섭섭하게 한채 끝날 가능성이 짙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워싱턴=정일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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