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일 교통부장관께어쩐지,바람 잘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정부 발족과 함께 불어닥친 재산공개 바람은,장관 휘하 철도청장의 목을 날렸고,그 와중에 우리 철도사상 최악이라는 구포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공교롭다면 공교롭습니다.
장관은 지난 27일,취임후 꼭 한달동안 파악하고 구상한 교통행정의 청사진을,직접 대통령앞에 펴 보였습니다. 구포참사는 바로 그 다음날,일요일을 기습한 것입니다. 국회 어떤 의원의 지적대로,그야말로 GNP 1백달러의 후진국형 사고였습니다. 바로 전날 장관의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을 챙겨 보면서 느꼈던 소감의 일단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이 많던 첨단 고속전철과 영종도공항 등은 기정 계획대로 길게 설명한 반면,벌써 한계에 이른 기존 철도 수송능력 확충에는 별 말이 없고,그 안정대책에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던 것입니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장관은 그 보고에서 「대도시 교통난의 과감한 개선」을 시책의 제1조로 들고,그 첫머리에 「지하철 중심의 교통체계 구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의 경우 금년에 지하철과 전철 43.7㎞를 완공하고 61.5㎞를 착공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교통난 해소대책이 착착 진행되는듯 합니다.
그러나 실정은 어떻습니까. 어제 신문(한국일보 석간 1일자 1면)에 발표가 된대로,수도권 전철의 과천선(15.7㎞),분당선(32.2㎞),일산선(21.1㎞)은 금년 완공예정을 내년으로,6∼9개월 미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지하철 제2기 1단계인 5호선(29.4㎞),7호선(16㎞),8호선(15.5㎞)의 금년 개통예정을 내년으로 미룬 것은 이미 작년 9월이었습니다. 따라서 금년에 개통될 지하철은 4호선 연장구간 1㎞와 3호선 연장구간 8㎞ 뿐입니다. 금년에 완공되는 지하철과 전철 43.7㎞라는 숫자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지하철 제2기 1단계 61.5㎞는 장관 보고대로 연내 착공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연내 공사실적은 7∼9%에 그칠 전망입니다. 자랑스럽게 보고할 실적은 못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수도권 교통대책에는 상당한 차질이 있다고 해야 옳습니다. 이대로 간다면,「96년 서울지하철의 교통분담률 50%」라는 장관의 보고도 허풍으로 끝날 염려마저 없지 않습니다. 1·2단계 지하철공사의 중복으로 인한 혼잡과 불편,과천·분당·일산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극심할 것 또한 불보듯 뻔합니다. 통치권 차원에서 대도시 교통난을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만큼 장관은 지하철 건설의 실적보다는 그 어려움을 더 찬찬히 살폈어야 했습니다.
지하철 제2기 1단계(89∼96년)는 사업비가 도합 8조2천억원에 이르는 큰 역사입니다. 이어 제3기 5조7천억원의 계획을 시행해야 합니다. 서울시 혼자서는 감당못할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 큰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까닭중의 큰몫은 국고지원의 미흡과 지연,보상법칙 미비에 있습니다. 모두 정부 차원의 협의가 있어야 하고,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야 할 사항들 입니다. 장관 역할이 바로 이런데 있어야 하고,청와대 업무보고의 의미 또한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데 비추어서는 교통부가 나서서 서울 어느 터널은 1인승 승용차의 통행을 규제한다든가 하는 따위 시책을 말하는 것은,너무 쩨쩨합니다. 모처럼 해외나들이하는 관광객으로부터 돈 몇만원씩을 거두어,관광사업에 보태겠다는 보고내용 역시 너무 구차합니다.
물론 교통부장관 할 일이 지하철만은 아닐 것입니다. 육상 및 항만의 운송체증으로 인한 한해 손실이 2조원,GNP 1%에 이른다는 보고(한국일보 석간 3월29일자 2면)가 이를 말해줍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는 교통부장관은 무엇보다도 교통복지의 주무장관일 것입니다. 교통서비스가 아니라 교통복지입니다.
흔히 하는 말대로 현대생활의 기본은 의·식·주 더하기 행 즉 교통입니다. 이제 교통정책은 국민의 의·식·주를 보장한다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심각하게 발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통행정의 역량과 정책능력이 이 요청을 충분히 소화할만한지를 묻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한달 남짓 몸소 살펴본 장관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안됐습니다만,이 물음에 대한 나 스스로의 대답은 퍽 회의적입니다. 교통부의 이번 업무보고 내용을 보는한,이번 구포참사의 자초 지종을 보는 한,그뒤 끝에 있는 국회 상위의 동문서답을 보는 한,물러난 철도행정 책임자의 재산형성 과정을 보는 한,그렇습니다. 그만큼,교통행정의 개혁을 책임진 장관의 짐은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신 교통의 복지적 측면은,아무리 사소한 개혁이라도 당장 국민들 피부에 닿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로서 요즘 개혁바람의 뜻이 어디있는지를 일찌감치 국민들에게 확인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개혁의 결실을 선도하는 셈인데,장관의 소관업무 특성은 그런 역할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은 그 가능성을 활용해야 합니다. 개혁을 서둘러야 합니다. 여기 장관을 향한,역대 교통부 장관들과는 다른 기대가 있습니다.
장관은 취임사에서,「한 나라의 발전 척도를 알려면 바로 그 나라의 교통실태와 교통행정 체계를 보라」는 말이 있음을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수긍하면서,나는 교통체계와 교통행정체계는 한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또는 얼마나 불만없이 사는지의 척도도 되리란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바라기는,장관의 재임중 우리나라 교통실태와 교통행정체계의 일신된 면모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대통령이 밝혔던 「통치권 차원」의 교통공약이 유명유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늦었습니다만,장관 취임을 축하합니다. 건투있기를 빕니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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