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개혁선풍에 야당의 존재가 희미해졌다는 소리가 나온지는 오래된 것 같다. 여당이 야당 몫까지 앞질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니 야당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야당 못지않게 영역이 좁아진 것은 재야세력이다. 김 대통령의 새정부가 야당 몫뿐 아니라 재야의 몫까지 먼저 챙겨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야인사를 청와대 측근 참모의 하나로 불러 앉힌 것부터가 그랬지만 이제 그 구상들이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첫 움직임이 바로 지난달 31일 김 대통령이 수원에서 농민을 위해 극렬투쟁을 해온 재야운동권 대표들과 만난 것이다. 쇠고기 수입반대,쌀수입 반대를 외치며 정부청사 유리창까지 부수는 농민 과격시위대를 주도해온 전국 농민단체협의회 회장과 전국농민총연맹 회장이 포함된 17명과 대화를 가졌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과거 오랫동안 극한 투쟁을 밥먹듯해왔던 야당 총수답게 오는 4·19 기념일에는 급진운동권을 포함해 대학생 대표들과 시국토론회도 가질 계획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수원에서 농민 대표들로부터 「과거와는 전혀 다른 개혁」이라며 박수를 받은 그는 이제 학생들로부터도 개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야심이다. ◆이러고 보니 지난 시대에 정권타도 투쟁에 정열을 쏟아왔던 여러 재야단체들이 앞으로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에선 대중운동을 고집하고 있긴 하나 그보다는 환경·교육·교통 등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문제로 활동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탁아소 운영,농산물 판매 등에까지 손을 대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선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급선무일 것이므로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정책을 계속 변함없이 밀고 나가는 한 문민정부 타도운동이나 대규모 군중집회 따위는 이제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쇄신위원회에 경실련을 포함시키는 등 재야인사를 개혁정책 결정에 참여시킨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소리가 또한번 나올만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