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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대출 금지령 금융개혁 “신호탄”/정경 검은유착 고리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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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대출 금지령 금융개혁 “신호탄”/정경 검은유착 고리끊는다

입력
199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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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그룹에 줄대고 은행돈 제맘대로/경제 좀먹는 대표적 권력형부패 악명/“공정한 시장경제” 계기될듯정치가들에 의한 권력형 청탁대출 금지령으로 금융개혁의 신호탄이 올랐다. 정부가 정치인의 청탁에 따른 대출을 비롯,정치권에 의한 금융특혜를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금융계는 물론 건국이래 고질이 돼온 정경간 검은 유착관계에도 일대 변혁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치권에 의한 권력형 금융특혜는 자유당 정부이래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정경유착,권력형 부조리 등 온갖 경제 부조리의 핵심고리로 작용해 왔다. 또 5공초 재벌해체에서 보듯 금융은 경제에 대한 권력가들의 지배수단이기도 했다.

기업내용이 어떻든 당대의 실세그룹에 줄을 댄 기업은 은행돈을 자기 쌈짓 돈처럼 마음대로 주물러 흥하고 정치권에 미움을 산 기업은 아무리 덩치 큰 재벌이라도 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권력에 의해 시혜되는 금융특혜가 가능한 풍토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금융계는 물론 학계도 이번 조치를 『관치금융을 실질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금융개혁 조치』로,또 『정치권의 재산공개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개혁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는 만큼 기업도 정치권에 손을 내밀어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천명한 것은 자신의 최대 권한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재벌을 비롯한 경제계에 대한 지배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특유의 자기희생적 일대 결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특혜의 주역들은 시대에 따라 변천은 했지만 대개 당대의 정계 실력자 들이었다. 유신과 5공 정부때는 청와대는 물론 안기부가 그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이들은 은행 밖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은행장으로 군림하면서 대출받을 기업과 대출금액,금리마저 결정하곤 했다. 효율적인 자금배분이라는 금융의 시장원리나 은행의 본질중의 하나인 부실여부를 가리기 위한 심사가 끼여들 틈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정된 금융자원이 오로지 권력가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강제 배분되다보니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개인에게는 은행 문턱이 높을 수 밖에 없었고 기업들은 건전 경영보다는 줄대기에 바빴으며 은행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떠안은 정실 대출로 부실의 늪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금융과 재벌,권력가들의 상호유착은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움직이면서 우리 경제을 좀먹고 있는 정경유착과 권력형 부패의 핵심구조다.

대표적인 시중은행인 A은행은 B그룹에 대출해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3천억원에 상당한 부동산과 유가증권에 대해 강제 집행에 나섰지만 현역 K모 의원의 압력으로 수년째 집행을 못하고 있다. 못받고 있는 3천억원은 1년 이자만 해도 3백억원. 이 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익은 5백억원에 불과했다. 금융가의 황제로 통했던 그는 매년 3백억원을 벌어주는 대가로 B그룹으로부터 어떤 반대급부를 받았고 어디에 그것을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그는 은행실무자들이 매달 작성하는 강제집행 진척에 관한 보고서를 은행장보다 먼저 받아 보는 위력을 지금도 행사하고 있다.

총선거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B은행은 할당된 저리의 유망중소기업 자금 60억원의 절반인 30억원을 50대 재벌에 드는 C그룹에 변칙 대출했다. 모처의 전화 한 통화로 최소한 30개 중소기업에 1억원씩은 돌아갈 돈을 혼자 통째로 삼킨 것이다.

정계실력자였던 P의원의 처남이 운영하던 백진무역은 P의원의 기세가 꺾이면서 승승장구에 급제동이 걸려,지난해 9월 은행에 30억원의 부실채권을 남기고 부도를 냈다.

청와대 모 전 수서비서관이 지난해 망해가는 신한인터내셔날에 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을 가해 청와대내에서 조차 구설수에 오른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몇가지 사례만으로도 금방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같은 전형적인 권력형 부패에 메스를 대겠다는 것이 이번에 나온 정치권 대출청탁금지령의 취지다. 권력에 약한 자의적 부실대출 관행을 청산하고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원리가 존중되는 투명한 게임의 룰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정치의 금융지배와 정치적 논리에 의한 자금배분이 사라지고 은행의 절제된 공정한 원칙이 자리잡으면 은행 문턱도 낮아질 것이고 재벌·중소기업·가계 모두가 신바람나게 일하는 「신경제」의 기초적 조건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금융계에서는 기대를 하고 있다.<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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