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으론 한계” 고통분담 수용/사상 첫 자율조정… 노사 새전기/노총 양보폭·대표성등 논란소지도노사가 1일 사상 첫 공동 임금인상안에 합의한 것은 노사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노사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일단 평가된다. 아울러 공무원봉급동결,공산품가격동결,과장급 이상 관리직 임금동결 등 정부와 재계의 일련의 「고통분담」 조치들에 생산직 근로자 등의 임금 자제가 덧붙여짐으로써 김영삼정부의 「신경제 1백일 계획」이 외면상 노·사·정의 삼두마차체제로 모양새를 갖춰 추진력을 얻게 됐다.
50여일간의 우여곡절끝에 노사합의가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새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고통분담」 드라이브가 노사양측에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현실적으로 실업률이 3.4%대로 치솟는 등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임금인상률에 집착,국민정서로부터 유리되기보다는 실질소득 보장과 고용안정의 실리를 취하자는 입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과정에서 정부 역시 노사관계를 대하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갖기 시작했음을 보여줬다. 정부가 노사간의 극한 대립과 강제력에 의한 조정으로는 우리경제의 규모로 보아 더이상 성장을 지속해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아래 법적 강제가 아닌 「자발적 조정」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 타결에 큰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즉 물가안정 고용안정 실업대책 등 미래의 청사진을 담보로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자발적인 임금억제를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합의타결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노사정책은 일찍이 60년대의 영국,70년대초 이후의 미국,오일쇼크이후의 일본 등 선진 각국의 정부가 경제적 전환점에 섰을 때 공통적으로 실시했던 일종의 「사회계약」적 노사정책이라 할 수 있다.
신경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노사 대표들에게 경제상황을 설명하고 산별 노조위원장을 따로 만나 고통분담을 요청한 것이나 신경제 계획 발표이후 협상과정에서 이경식부총리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직접 박종근 노총위원장과 이동찬 경총회장을 한자리에 불러 거듭 원만한 협상타결을 강조한 것은 정부의 이러한 노사정책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또한 정부는 협상타결이전에 노총측에 고용안정과 물가안정을 위한 실질적 대책마련을 확약,협상타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선 것도 새로운 노·사·정 협상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측은 지난 2월9일 공동 임금인상안 마련에 동의한 이래 50여일간 9차례의 공식 협상과 지속적인 비공식 접촉을 진행시키면서 여러차례 우여곡절을 겪고 완전결렬 직전의 위기에까지 직면하기도 했다.
당초 노총은 지난해 최저 생계비 인상률을 근거로 12.5%의 임금인상률을,경총은 물가상승률 수준인 4.5%를 주장,심한 입장차이를 보였으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임금인상 자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어느 정도 형성하고 있어 타결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졌었다.
다만 양측이 어느 정도 내부설득을 통해 모양새를 갖춰나가느냐가 문제일 뿐이라는 전망까지 나돌았었다. 그러나 지난달말 공무원 임금동결을 필두로 공산품 가격동결,민간기업 과장급이상 관리직 임금동결 등 정부와 재계의 폭탄성 조치들이 잇따르자 노동계가 「임금인상억제를 위한 목죄기」라며 반발,협상은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사상 첫 노사임금협상을 결렬시켰을 때 돌아올 사회적 비난을 의식한 양측은 협상을 지속했고 여기에 정부의 강력한 막후조정이 더해져 결국 양측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한 선에서 협상이 타결되기에 이른 것이다.
일단 공동 임금인상안은 마련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당장 노총과 경총의 대표성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금까지 연간 임금인상률이 노총측이 제시했던 임금인상안에 근접했던 전례로 미루어 이번 임금인상안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일단은 전망된다. 그러나 노총측이 정부와 재계의 강경자세에 지나치게 소극적 자세로 양보를 거듭,근로자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는 진보적 노동운동세력의 비난을 효과적으로 무마하지 못한다면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2노총」 결성움직임에 가속도를 더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협상타결이 앞으로 건전한 노사문제 해결의 기본틀로서 자리잡을 수 있느냐의 열쇠는 정부측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가 「고통분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물가안정,고용안정,금융실명제 등의 제반조치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노동계는 정부측의 「계약파기」를 이유로 내년에는 올해와 달리 강경한 자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인다.<김준형기자>김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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