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성들이 갱년기 증세를 병으로 인정받아 당당하게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갱년기 증세를 심하게 겪는 여성들이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의사들은 『남들도 다 겪는 일이니 참으라』고 충고하는게 고작이었다. 좀더 친절한 의사들은 『늙어간다는 허무감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기분전환을 하라』고 말했지만,온갖 육체적 고통속에 늙어간다는 허무감조차 느낄 겨를이 없는 여성들에게 그 조언은 절망을 깊게 할 뿐이었다.여성의 갱년기는 정신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육체적인 문제이다. 폐경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 오기전에 여성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루에 수십번 열이 솟구쳐 갑자기 땀이 쏟아지고,열을 못이겨 잠자리를 옮겨다니느라고 밤마다 잠을 설치고,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이 쾅 내려앉고,기억력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져 치매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진다.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해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고,똑같은 호소를 계속하는 동안 가족들도 지겨워하게 된다.
89년 정형외과와 내과의사들이 골대사학회를 창립하여 폐경이후 여성들의 골다공증을 연구하고,산부인과 의사들이 92년 폐경학회를 창립하면서 갱년기 여성들은 고통을 호소할 곳을 찾게 됐다. 각 병원에 갱년기 클리닉이 생겼고,의사들은 『참으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친절하게 「갱년기 환자」를 맞고 있다.
『여성호르몬은 하는 일이 많습니다. 성기능뿐 아니라 칼슘대사,지질대사,열조절,뇌의 기능,심혈관 기능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성호르몬이 끊기면 하루 3∼5g의 칼슘이 빠져나가 10년이 지나면 30∼50%의 칼슘을 잃어 뼈가 푸석푸석해집니다. 40대 여성의 심혈관 질환 발병률은 그 이전 연령층의 4배,60대 여성은 6배로 갑자기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갱년기 증세가 심하지 않은 여성들도 치료를 받는게 좋습니다』라고 의사들은 설명해준다.
갱년기 클리닉에 가면 오십고개를 넘고 있는 여성들이 진료를 기다리며 오랜 친구들처럼 얘기를 나눈다. 자신은 어떤 증세를 겪었고,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아도 들려준다. 『오랫동안 고생을 하다가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한 산부인과 의사가 갱년기증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내 증세와 너무 똑같아서 다음날 그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전국에 방송을 듣고 몰려온 중년여성 수십명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는 클럽을 만들자고 서로 반가워했지요』라는 말도 들린다.
우리나라 여성중에서 갱년기 치료를 받는 여성은 전체의 5% 미만으로 서구의 30%선에 비하면 매우 낮다. 의사들은 여성의 평균수명이 날로 길어져 생애의 3분의 1이 갱년기이후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좀더 적극적으로 갱년기증세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몰래 고통을 겪던 어머니 세대에 비해서 오늘의 여성들은 훨씬 행복한 조건속에 갱년기를 보내고 있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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