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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은 없다/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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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은 없다/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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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태풍이 정부와 국회에 몰아치고 있다. 사법부와 군도 조만간 태풍권에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재산공개는 그 자체가 이 엄청난 파문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부패,타락,비리 등 도덕불감증이 얼마나 중증이었던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이 붕괴,천민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이 화근이다.

「재산공개」에서 드러난 상식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과도한 땅·주택 등 부동산의 매입,보유에 대해 국민적인 분노가 해일처럼 일어나는 것은 고위공직자로서 윤리상실에 대한 배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비윤리」의 제기가 「여론재판」식이고 「비리」의 정의에서부터 처리기준 등이 관념적이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다. 김영삼대통령의 「윗물맑기운동」 「신한국」 운동 등 정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깨끗한 사회」로 전환하는데 거쳐야하는 여과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정화의 태풍접근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대이익집단이 있다. 재계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이헌)는 여신관리대상 30대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4월중에 ▲계열사간의 부당 내부자거래와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하도급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공정거래위의 실사가 「경제사정의 칼」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재계에서 특히 우려하는 것은 부당 내부자거래조사다. 공정거래위는 부당한 내부자거래를 비자금 조성의 온상으로 보고 있다. 실사의 중점 조사대상은 ▲가격차별 ▲대금지급 차별 ▲대금지급 조건차별 ▲임직원 강제판매 ▲거래강제 ▲거래거절 등이다.

계열기업이란 특수관계를 이용하여 부당이득을 챙기거나 또는 비계열사라고 하여 부당하게 차별하는 불공정행위가 없었나하는 것을 캐어보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는 지난 2월말까지 30대그룹으로부터 내부자거래자료를 서면으로 제출받아 1차적으로 불공정 유무를 심사하고 있다. 문제점이 발견된 기업을 집중 조사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연례적으로 실시해온 하도급 실태조사도 강화키로 했다. 지금까지는 5대 재벌계열의 대기업을 상대로 대금지급관계만 조사했으나 이제는 대상을 5대 재벌그룹외까지로 넓히고 조사범위도 ▲부가가치세 상당분 분리지급 여부 ▲부당한 반품 ▲거래중단 ▲납품인수 지연 등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

벌칙도 강화했다. 대금지급 촉구에 그치지 않고 관급공사 입찰자격 박탈,세무조사 의뢰 등의 조치도 취하기로 했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자면 대(조립)기업과 중소(부품납품)기업 사이의 관계가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해야 한다. 공정거래위는 하도급 실태조사를 이번에는 전자·기계·자동차·조선 등 대표적인 조립산업을 상대로 실시하는데 중소기업체들이 보복이 두려워 고발이나 신고를 하지못해 직권조사하는 것이다. 「직권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평등관계의 심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재계는 공정거래위의 내부자거래 및 하도급 실사에 「자정노력의 저하」 「기업활동 위축」이라 하면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재계는 「경제적 동물」이다. 특히 한국 재계는 자기이익보호에 본능적이다.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느냐가 유일한 가치의 척도다. 그 앞에서는 도덕·윤리 등 가치관이 설 자리가 없다. 「민간주도경제」 「자율경제」를 주문 외우듯 주장하지마는 과연 우리 재계가 「자율」을 가질만큼 성숙돼 있느냐는데는 의문이 없지 않다. 지금 미일의 대기업은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사활적 경영개혁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재계는 30년전이나 다름없이 고임금·고금리의 불평만 하고 있다. 또한 적당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정부의 금융긴축완화로 생긴 여유자금을 재테크에 돌리고 있다고 한다. 잘못하면 거품경제가 재연되지 말란 법도 없다. 재계도 정말 바뀌어져야 한다. 재계가 사정으로부터 성역이 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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