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람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것은 1814년의 일이다. 영국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달릴 수 있는 철도를 11년후인 1825년에 부설,철도문명의 시대를 열었다. 그 5년후인 1830년엔 미국이 철도를 깔았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1872년에 처음으로 철도문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1899년 9월18일 경인선이 부설,개통됨으로써 철마교통시대를 열었다. ◆경인선 개통부터 따지면 우리의 철도사는 정확히 94년째가 되는 셈이다. 그후 우리 철도는 근백년사속에서 총연장길이는 최초의 경인선 33.2㎞에서 26개 노선,6천4백62.18㎞로 늘어났다. 그 철도위에는 하루 여객열차 1천4백58회,화물열차 5백66회 등 모두 2천24회가 운행된다. 철도가 담당하는 수송인원은 하루평균 1백51만5천명,연 5억5천4백45만2천명으로 전교통수단중 26.5%의 수송량을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철도는 경제성장만큼 발전하지를 못했다. 자동차의 대중화에 밀려 한때는 사양길을 내닫기도 했다. 정부조차 적자를 이유로 투자를 기피,철도의 노후화를 가속시킨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자동차의 폭증으로 고속도로 등의 체증이 날로 심해지면서 승객과 화물이 철도에 다시 몰려 철길과 열차가 함께 혹사당하기에 이른 것이 요즘의 추세다. ◆투자는 빈약하면서 이용을 극대화하다보면 사고 다발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구포 사고같은 대형참사까지 겪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이 다른 사고처럼 충돌이나 추돌은 아니지만. 우리 철도 사상 공식기록으로 보면 78명의 사망자를 낸 구포사고는 단연 최대다. ◆6·25 전쟁당시인 51년 10월 지리산에 몰린 공비들이 전남 순천여수간 여객열차를 탈선케 하고 승객 1백20여명을 산으로 끌고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공비들에게 납치된 승객들이 희생됐는지 풀려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래서 철도청의 철도사고 공식통계에서는 이것을 사건으로 볼뿐,사고로 보지 않는다. 어찌됐건 기록적인 철도사고가 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나쁜 기록은 적을수록 좋다. 더이상의 사고기록 경신이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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