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바람이 봄들녁의 불길처럼 온 나라를 휘감고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펼쳐졌던 여러 형태의 개혁을 보아왔지만 이번의 경우는 확실히 다르다. 개혁의 추진방법이 다르고 이를 보는 국민의 반향이 다르다.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은 개혁이 이처럼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새삼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부와 권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단순한 취지에서 출발했다는 공직자의 재산공개. 이 재산공개가 정치권의 물갈이는 물론 사회지도층의 개편까지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주변의 한 인사는 『새 대통령이 취임한지가 이제 겨우 한달이 됐는데 몇년이 지난 것만 같다』고 말하고 있다. 개혁정책이 얼마만큼이나 힘겹게 추진되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국민들은 고위직 인사에서 재산공개로 이어지는 새정부의 파격적인 개혁추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일부 외신은 「혁명적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까지 분석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구조적 모순에 찌들어 있을 때 흔히 이 사회는 「혁명이냐,개혁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최선책은 개혁에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다.
혁명은 초법적인 비상수단의 동원을 허용하며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전개를 인정하고 있다. 개혁은 그렇지가 않다. 개혁은 합법적 테두리안에서 확실하고 분명한 계획아래 추진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청사진이 필요하다.
특히 강력한 개혁을 위해서는 개혁정책을 통합조정함은 물론,어느 상황이라도 신축성있게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개혁의 청사진이 없고,개혁추진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혼란일 뿐이기 때문이다.
새정부의 개혁추진에 국민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개혁에 수반될 위험부담의 파급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자칫 새정부의 개혁이 종래와 같은 정권교체 과정의 「일과성 수단」으로 반복되지는 않나 하는 우려인 것이다. 그리고 개혁추진이 결코 한바탕 한풀이성의 「감각적 방법」으로 전개돼서는 안된다는 바람이다.
만일 개혁추진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다면 「중우정치」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고,필요이상의 충격요법을 사용하려든다면 국민의 기대수준을 지나치게 높여 버린 나머지 뒷갈망을 못할 수가 있다.
그런만큼 개혁을 위한 열정 못지않게 개혁의 성공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이 요청된다. 이 프로그램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대세인 「개혁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담보가 된다.
우리 사회가 30년에 걸친 군사통치기간은 물론,광복 전후까지를 포함해 한번도 제대로 된 개혁의 기회를 갖지 못했음을 감안한다면 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더욱 더 절실해진다. 제대로 된 개혁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개혁으로 씻어낼 때가 많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제때에 개혁을 하지 못해 쌓여온 퇴적물의 부피가 크면 클수록 개혁을 위한 빈틈없는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5년전에도 값진 경험을 했다. 여당권마저도 「권력의 황금분할」이라고 수용자세를 보였던 여소야대의 정국을 개혁을 위한 기초토양으로 활용하는데 실패했다.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야권은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 여권은 자신의 권력기반 확보를 위해 5공과의 차별화에만 주력했을 뿐이다.
물론 5공 청문회는 어두운 과거청산을 위한 출발이라는 점에서 필요했다. 그러나 TV중계의 마력에 지나치게 끌려다닌 나머지 청문회 못지않게 중요했던 개혁의 영속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에 소홀했던게 사실이다.
만약 개혁을 지지한 당시의 국민적 에너지를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개혁입법 마련에 사용했더라면 우리 사회는 한단계 성숙해졌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이번의 개혁조치는 좀더 안정되게 진행됐을 것이다.
재산공개 과정에서 겪고 있는 시행착오는 앞으로 개정될 공직자윤리법에서 반드시 보전되어야 한다.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 등에 제대로 담겨져야 한다.
그래야만이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은 영속성을 지닐 수가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다음 정권은 개혁을 하면서도 이번처럼 값비싼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개혁의 영속성은 제도적 장치로 구체화될 수 있다. 법치국가에서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중의 하나는 입법화 조치이다.
여야는 지난주 3역회담에서 개혁입법을 다룰 정치특위를 국회내에 설치키로 합의했다. 4월 국회에서는 개혁입법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쇠는 달궈졌을 때 두드려야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개혁입법의 절대호기인 셈이다.
새정부의 인사파동과 재산공개 파문으로 얼룩진 3월도 이제 다 갔다. 3월은 개혁의 염원이 불같이 달아오른 달이었다. 4월은 이를 차분히 주워담아 개혁의 영속성을 구축하는 달이 되어야 한다.<편집국장대리>편집국장대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