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개 반드시 실사해야 된다/적당히 넘기면 국민불신만 증폭/축재과정 의혹 공직자 물러나야/“아니오” 외치는 중산층 목소리에 기대▼장차관과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로 온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국민들은 공직자들의 재산규모가 엄청나고 재산 형성과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 정부가 재산공개를 하기이전에 분명한 기준을 마련하고 재산공개와 함께 그 기준을 제시했다면 혼란과 의혹을 크게 줄일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산정방법,취득시기와 경위 등을 밝히고 국세청확인을 거치도록 했어야 합니다.
통일된 기준도 없이 적당히 재산공개를 하려고 했던것은 지금 국민의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과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각자 공개한 재산을 엄격하게 실사하고 정도가 지나쳤던 사람들은 물러나야만 국민의 의혹이 사리질 것입니다. 국민들도 무조건 재산규모를 보고 분노할게 아니라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상속을 받았다거나 재산 형성과정에 하자가 없는 사람들까지 무더기로 매도하는것은 재산공개의 본뜻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재산공개란 앞으로 공직을 이용한 부패를 막기위한 것이므로 국민이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전직 대통령도 공개
▼전직 대통령들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전직 대통령이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취임하기전에 공개한 재산은 얼마였고 지금은 얼마라는 것을 밝히는것이 공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정부는 김영삼대통령 임기안에 금융실명제를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제여건으로 볼때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경제학자로서 정부의 주장에 동의 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주장에는 신물이 납니다. 경제가 좋을때는 금융실명제가 찬물을 끼얹을 염려가 있다는 핑계로 미루고,경제가 나쁠때는 실명제가 침체를 더깊게 한다는 핑계로 미루는데,이것은 결단의 문제입니다. 시대와 상황이 변했는데도 새 정부의 경제팀이 지난 정부와 같은 논리를 펴는 것에 실망했습니다. 실명제는 경제가 좋든 나쁘든간에 일정한 부작용을 각오해야 하며 그것을 겁내다가는 끝내 시행하지 못합니다. 지금 기득권 세력은 실명제를 반대할 구실만 찾고 있습니다.
전경련은 실명제를 무조건 찬성한다고 말해놓고선 실명제를 시행하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더 타격을 입는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려가 사실이라면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걱정을 해야지 왜 전경련이 걱정을 합니까. 경제여건이 나쁘다는 소리를 자꾸하는데,지금 경제는 경기순환적으로 볼때 내버려둬도 더 나빠질 상황이 아닙니다.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지금 실명제를 시행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이번에 재산공개 파동을 겪으면서 실명제없이는 재산공개가 실효를 거둘수 없다는 공감대가 국민들사이에 형성돼 있다는 것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한다면 금융거래의 실명화,금융소득의 종합과세,증권거래 소득의 종합과세 등을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실명제란 어차피 개혁차원에서 시행하는 충격적인 조치이므로 도망갈 틈을 열어놓지 말고 한꺼번에 시행해야 합니다. 어항물이 더러우면 그속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수 없습니다. 어항물을 깨끗이 하자는 것이 실명제입니다. 부정부패·불로소득·지하경제 등을 뿌리 뽑으려면 실명제를 한꺼번에 시행해야 합니다. 실명제는 이미 6공때 6차경제 5개년 계획안에 토지공개념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재무부가 충분한 실무작업을 했고 전산망도 확충되어 있는데,이제와서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신경제」에 대해서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경제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고 어떤 훌륭한 정책도 한약처럼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인데 「신경제」니 「100일 계획」이니 하면서 국민의 기대를 부풀려 놓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만일 1백일 계획이 끝났는데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없을경우 그 실망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경제란 5년 10년앞을 바라보면 중장기 과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방향에 맞춰 단기처방을 내놓아야 합니다. 정부는 오는 6월까지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나는 앞으로 경제의 큰 줄거리를 산업공동화 방지와 경제정의 실천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처방은 위험
지금 우리경제는 공업침체,제조업 조로,서비스산업 비대화라는 산업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데 농업과 제조업을 산업의 핵으로 삼아 활력을 불어넣으며 육성해야 합니다. 서비스선업은 곁가지인데 나무자체는 시들시들하고 곁가지에서 꽃이 피어서는 안됩니다.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고용증대가 돼야지 서비스부문에서 고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GNP 성장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성장의 내용을 따져 볼 때가 되었습니다. 1인당 GNP가 6천불이라면 소득이 6천불에 가까운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제가 튼튼한 경제입니다.
경제적 약자의 처우가 개선되고,소득분배가 잘 이루어지고,중소기업이 강화되고,경제력집중을 막는 경제정책이 신경제의 골격이 돼야 합니다. 산업공동화 방지와 경제정의 실천이 잘 조화되면 자연히 사회기풍도 건전해질 것입니다. GNP가 10% 성장하면 좋고 5%면 나쁘다는 GNP신화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GNP신화를 더 이상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농업과 제조업을 살리려면 어떤 구체적인 방안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해외시장에서 이미 가격경쟁력을 상실했고 품질경쟁으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을 위한 장기계획과 단기적인 기술도입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안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10년후 15년후를 위해 기술교육 등에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국가경제에 초석을 놓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농업을 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나는 우선 새 정부가 농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작업부터 하라고 권하겠습니다. 우리가 농업을 포기할 수 없고 6백만 농업인구를 저대로 방치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농촌문제는 경제논리를 초월해서 풀어가야 합니다』
○의식개혁 뒤따라야
▼경실련(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은 89년 발족한이래 신뢰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구심체로 자리잡았습니다. 짧은 기간에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사회에 경제정의가 없기 때문에 경실련과 같은 단체가 필요했고 국민의 호응도 컸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에 반대할 수 있는 세력은 야당과 재야단체 뿐이었는데 그들은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선언과 구호와 투쟁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안을 제시하는 경실련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4년에 걸친 경험으로는 경제정의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세력이 커져야 합니다. 재산공개 파문도 시민의 의식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한차례 소동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통질서를 안지키는 자동차나 거리에 껌을 버리는 사람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바로 잡으려는 시민의식이 있어야 정치와 경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중산층에 걸맞는 도덕심을 길러 견제세력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을 향해 서슴지 않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돼야합니다. 그런점에서 이번 재산공개가 시민의식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합법적인 투자로 재산을 늘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실련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경실련의 입장이라기보다 나자신의 생각을 밝힌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이나 증권 등에 투자하여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투자든 투기든 재산을 늘리려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심판관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불로소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세금을 제대로 걷고,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얻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되면 재산이 많다고 비난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직자에게 보통사람 이상의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불가피한 일입니다』<대담 장명수 편집위원>대담>
□약력
▲1927년 황해도 황주태생
▲서울대 경제학 박사·미 밴더빌트대 대학원 수료
▲서울대교수·상대학장·교수협의회 회장 역임
▲80년 서울대 교수해직·84년 복직·92년 정년퇴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경실련 공동대표
▲저서 「경제수학」 「경기순환연구」 「분배의 경제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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