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명이 목숨을 잃었다. 1백여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경부선 구포역 부근에서 탈선·전복된 무궁화호 여객열차 사고의 참담한 모습이다. 우리 철도 1백년 사상 최대의 참변이다.이 대참사는 사람의 힘으로는 미리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잘못해서 저지른 인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자제하기 힘든다.
일시에 수백명의 승객을 수송하는 열차가 통행하는 철로시설물들은 특별히 보호하고 관리하도록 철도관계법과 형법이 규정하고 있다. 철도사고가 초래하는 인명피해가 대량적이고 참혹하다는 것은 긴 설명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전은 이 나라의 최대 간선이며 여객열차와 화물열차의 통행이 가장 빈번한 경부선을 지하로 관통하는 지하전력구 설치공사를 하면서 철도청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반업체에 공사를 맡겼다는 말인가. 공사를 맡은 삼성종합건설은 사고지점의 철로지반이 제방을 축조해 만든 곳이며 큰 하천을 끼고 있어 지하수가 많은 사질토였다는 사실에 특별히 대비하거나 특수공법을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발파가 전문인 지방의 작은 토공회사에 하청을 주어 철로부근 30m까지 근접한 지하 35m에서 마구 발파작업을 하게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지름 4.5m의 지하터널(전력구)에 몰려드는 지하수를 대량으로 퍼내는 공사도 강행했다는 것이다.
모래가 많이 섞인 지질에서는 적당한 지하수가 있어야 지반을 받쳐준다는 것은 토목공학의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사고지점의 지하에서는 발파충격으로 지층이 흔들려 유동성이 심해진데다 계속해서 지하수를 뽑아냈으니 철로밑의 지반이 함몰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보는 직·간접의 원인이다. 이러한 토목공학의 기초까지 무시한 시공업체가 공사를 했다면,그게 바로 인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고가 나자 철도청은 재빠르게 한전과 시공회사측의 공사 잘못만을 들고 나왔다. 철도청의 이런 태도는 전혀 옳지 않다. 철로보호와 보수의무를 지고 있는 부서인 철도청의 책임은 어떤 이유로도 면제될 수 없다고 우리는 본다. 철도청은 지하전력구 공사가 철로부근에서 발파와 대량의 지하수를 퍼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어야 했고,알았다면 스스로 나서서 안전도를 문제 삼았어야 마땅했던 것이다.
한전측이 협조자체를 통보해오지 않았고 공사방식이 그런 식인줄을 몰랐다면 직무태만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한전과 삼성종합건설 등 시공회사,그리고 철도청은 이번 참사에 대해 각각의 책임을 엄중하게 져야 한다. 경부고속철도 건설까지 착공한 시점에서 빚어진 전근대적이라할 대참사는 우리의 철도건설과 안전행정을 일대 쇄신하지 않고서는 또다른 인재를 막을 길이 없다는 참담한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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