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결핍으로 경제 맥빠져/거품해소엔 성과… “감속 너무 빨랐다”「안정은 얻었으나 성장잠재력을 잃었다」 한국은행이 25일 92년 국민계정을 통해 밝힌 지난해 우리 경제에 대한 총평이다.
정부의 일관된 안정화 정책으로 물가가 잡히고 국제수지가 크게 개선되는 등 30여년간 우리 경제에 고착된 인플레 체질이 어느정도는 치유됐지만 경제성장률은 4.7%로 지난 80년이래 12년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우리 경제의 적정선인 잠재성장률(7%)에도 못미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성장의 불씨가 꺼져가는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안정의 대가가 너무 비쌌던 것이다. 경제안정에만 너무 집착하다가 개발도상에 있는 우리 경제의 최대과제중의 하나인 성장을 희생당한 셈이 된 것이다.
정부가 91년부터 총수요관리를 통한 경제안정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성장감속은 예견됐었다. 물가와 수지적자를 잡고 우리 경제에 만연한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안정은 필연적이었고 이를 위해 국민 모두가 고통을 감내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장의 감속속도가 너무 빨랐다. 성장률도 설비투자도 모두가 80년이래 최저를 보였다. 안정의 정책의 목적인 우리 경제의 착륙이 실패로 돌아간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코리아 컴퍼니」호가 더이상 항진하지 못하고 가라앉기 시작하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성장잠재력과 직결된 투자가 뒷걸음질쳤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마이너스 0.8%를 기록,80년의 19.2% 감소 이래 처음으로 감소세로 반전했다. 더구나 86∼91년중 매년 12∼23%씩 늘던 설비투자는 지난해 1분기 8.5%,2분기 4.5% 증가에서 3분기 마이너스 3.1%,4분기 마이너스 10.2%로 급냉각되고 있다. 지난 88년부터 시작된 주택 2백만호 건설과 함께 29%나 늘었던 건설투자도 2.6% 감소로 돌아서 성장률을 끌어내리는데 기여했다.
경제의 최대영양소인 투자가 결핍되다보니 경제의 대들보인 제조업이 힘을 쓸리가 없다. 제조업 성장률은 90년 9.1%,91년의 8.9%에서 지난해 4.8%로 급감속하고 있다. 더구나 상반기에 8.2%에 달하던 것이 3분기 3.3%,4분기 0.3%로 추락양상을 보이고 있다.
힘이 없기는 소비도 마찬가지. 민간소비 증가는 90년 10.3%,90년 9.3%에서 92년 6.4%로 크게 둔화됐다. 과소비는 없어져야 하지만 적절한 소비는 투자와 생산을 원활케 하는 경제의 윤활유다. 거품을 쓸어내기 위해 안정을 고집하다보니 제품을 만들고 쓰고 이를위해 투자하는 경제활동 전반이 급격히 위축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군살빼기가 성과를 거둔 측면도 없지않다. 물가는 91년 9.3%에서 4.5%,국제수지 적자는 87억달러에서 46억달러로 각각 절반정도씩 개선됐다. 물가안정으로 분배구조도 많이 좋아졌다. 근로자들이 급여형태로 받은 피용자 보수는 1백9조원으로 전년보다 11.8% 증가한 반면 기업활동을 통한 영업이익은 72조원으로 8.9%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에따라 이들 두가지에서 피용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90년 59.4%,91년 60.5%에서 61,2%로 상승,선진국 수준에 다가섰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해진다. 꺼져가는 투자와 제조업을 살려낼 부양책은 필요하지만 건설경기를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소비를 부추길 수요진작책은 오히려 우리경제에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섣부른 수요진작은 안정도 망칠 뿐더러 성장의 불씨마저 꺼뜨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최근의 우리경제가 보여주었다. 기로에 서있는 우리경제의 성패는 투자촉진과 수요진작을 명확히 가르는데서 판가름 날 것이다.<이백규기자>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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