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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부의 사회환원/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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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부의 사회환원/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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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재단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자선과 복지를 위한 재단이다. 미국의 대석유자본가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년)가 1913년 뉴욕에서 설립했다. 기아의 근절·인구문제 대학의 발전·미국내에서의 기회균등 및 문화적 발전 그리고 아프리카 등의 미개발국들에 대한 원조 등으로 「세계를 통한 인류복지의 증진」을 실현하려하고 있다.그러나 오늘날 이 위대한 목적을 실현하는 세계적인 재단의 설립자 존 록펠러는 원래 타고난 부자가 아니었다. 21세때 조그마한 상사를 친구와 동업으로 설입했고 부업으로 차린 정유소(1863년)가 번창,7년(1870년)만에 일약 백만장자가 됐다. 그것을 자본금으로 해서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창설해 다른 석유회사들을 기업합동(트러스트) 형태로 흡수통합해가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록펠러의 나이 43세때,석유회사를 창업한지 13년만인 1882년 미국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기업합동)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그의 오일 트러스트는 독과점으로 미국은 물론 해외에도 유전과 정유소를 무더기로 소유한 거대한 석유재벌이 됐다. 그러나 1911년 미국 연방 최고재판소로부터 반트러스트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게 되어 그의 석유기업합동은 해체되고 말았다.

부의 무한축적에 제동이 걸렸다고나 할까. 그 쇼크로 해서 록펠러는 재계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독과점의 비난속에 모은 그 엄청난 부를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형식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98세로 보람찬 생을 마감했다.

록펠러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체제하에서는 기업가든,개인이든 부익부하고 빈익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멸망하고 말리라고까지 장담했던 자본주의체제의 결함이다. 특히 자본주의체제가 정착되는 초기단계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불법·탈법·권력이용·부정의·비합리적인 온갖 방법이 쓰이게 되어 부 자체가 부도덕의 상징처럼 돼버려 「가진 자」가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는 천민자본주의가 되기 십상이다.

미국은 금세기들어 초기부터 30년대까지 이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카를 마르크스의 예언을 뒤엎고 현대 자본주의국가의 모델을 정립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속담의 「개같이 벌어 짐승처럼 쓰는」 도네이션(기부)정신인 것이다. 부의 사회환원이다. 능력껏 벌어가지고 즐긴후에는 그것이 돈이든,귀금속이든,예술품이든,골동품이든 가졌던 것들을 만인을 위하는 공익에 쓰도록 사회에 되돌려 주고 가는 것이다. 카네기·록펠러·포드 같은 억만장자들은 재단을 통해 부를 사회에 환원했고 폴게티나 헌팅턴 같은 명화·명저서·골동품 수집가들은 갤러리(전시관)나 리아브러리(도서관)를 지어 모든 사람이 보고 즐기게 하는 사회공유의 것으로 돌려주고 있다.

그만 못한 개인들은 대학 등에 도서관도 지어주고 책과 재산을 도네이션해 자신의 이름을 영구 불멸할 대학 등과 함께 살아남게 하고 있다. 도네이션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게 아니다. 그 정신이 귀한 것이다. 미국의 도네이션 정신은 그래서 일반화돼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관 등 고위공직자와 여당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로 그 재산축적과정의 정당성을 놓고 한없이 시끄럽다.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이 첫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문제는 「개같이 버는」 재산증식은 이제 그만하게 하고 「정승처럼」 쓸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계기를 이번에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에 있다할 것이다. 공직에서나 쫓아내고 형사처벌이나 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일과성에 그치면 천민자본주의를 우리는 영원히 탈피못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또 「가진 자」들이야말로 부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기십억,기백억원을 가졌다고,「돈밥」 먹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갖고 갈 재산도 아니라면 많은 사람을 위해 값지고 멋지게 써 존경이나 받아보는게 백번 낫지 않겠는가. 쓸 재주가 없다면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에라도 기부하면 이름 3자는 후세가 길이 기억해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 속에서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부의 한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반추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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