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여론에 물갈이 불가피/흠집 민정·공화계 도태 위기감여권내부에서 「무혈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공개에 따른 파문은 몇몇 문제의원들의 정치권 축출에 그치지 않고 여권의 권력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당초 의원들의 재산공개가 있기전부터 정치판의 「물갈이」가 불가피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부 의원들의 치부과정을 두고 강도높게 터져나오고 있는 국민의 비난여론은 마치 질풍노도처럼 정치권의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오는 96년의 15대 총선에 맞추어 터질 것으로 예상됐던 재산공개의 「시한폭탄」은 24일 박준규 국회의장이 사의를 표시한 것을 시발로해 3년 앞당겨서 터진 셈이다.
정치개혁의 방향은 물론 3공에서부터 6공에 이르기까지 여권세력을 형성해왔던 인사들을 거세하는 쪽으로 나갈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당내 민정·공화계의 급격한 쇠퇴 내지는 몰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른바 「신개혁 주도세력」이라 불리는 민주계 인사들은 재산공개가 있기전부터 이미 『재산공개를 하고 나면 누가 개혁의 주체이고 누가 개혁의 대상인지 분명하게 가릴 수 있을 것』이라며 상당수 정치인의 도태를 예고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의원 재산공개가 이같은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고 추진한 것 아니냐』며 「의도설」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설사 사실이더라도 대세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과거 양지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구 여권인사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항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의원 재산공개의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최형우 사무총장은 이날 『정치인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게끔 양심적으로 깨끗해야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다』며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면 당사자는 스스로가 거취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또 『국민이 믿지않는 사람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일할 수는 없다』며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박준규 국회의장이 사퇴한 것은 여권내부의 권력구조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민자당은 당내에 구성된 「재산공개 진상파악 특별위원회」를 통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0여명 이상에 대해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재산공개 파문을 일단락지을 방침이지만 개혁의 거센 물결은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 관측이다. 비록 가시적인 조치는 뒤따르지 않더라도 상당수의 민정·공화계 인사들이 도덕성을 의심받게 됨에 따라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이다.
개혁추진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당내 역학구조의 변화는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정책에 소극적인 「잠재적 반대세력」을 잠재우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김영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권력의 상층구조를 민정계가 점하기는 했지만 당내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구 여권세력을 정치적으로 거세하지 않고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의 의원 재산공개는 이미 힘의 중심이 민정계에서 민주계로 옮겨가기 시작한 권력이동에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재산의 축적과정으로 물의를 빚거나 정상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부를 갖고 있는 인사들은 15대 총선을 앞두고 대거 공천탈락할 것이 분명하고 그 대부분은 민정·공화계에 해당될 전망이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인사는 선거에 나서더라도 떨어질게 뻔한데 공천해줄 수 있겠느냐』며 『더욱이 개혁정책과 맞지 않는 인물을 총선에 내세우는 일은 김 대통령의 정국운영 구도와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재산공개 파문이 당지도체제의 조기개편을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의 개혁방향을 크게 보면 결국 군사정권하에서 왜곡된 정치문화를 바로잡자는 것인데 군사정권의 주역을 맡았던 인사를 「당의 얼굴」로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김종필대표가 재산공개에 있어서 소극적 입장을 보여왔고 또 재산공개 파문을 수습하는데도 김영삼대통령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지면서 이같은 주장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여론에 떼밀려가고는 있지만 당내에서는 여전히 민정계를 중심으로 현재의 정치개혁 움직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민정계 의원은 재산공개 파문에 따른 일련의 조치를 중국의 문화혁명에 비유,『법에 따른 절차보다는 여론에 호소하는 인민재판식 방법으로 기존 정치권을 매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또다른 민정계 의원은 『과거에도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구 세력이 축출을 위해 부정부패척결,부정축재자 색출 등이 단골메뉴로 사용됐는데 이번의 경우 총칼 대신 여론을 이용했다는 점만이 차이가 있을뿐』이라며 「문민독재론」을 말했다.
하지만 당내의 부분적 불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재산공개로 촉발된 정치개혁은 국민의 호응을 받고 있는 한 더욱 가속도를 붙여가며 추진될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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