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국민불만」 업고 개혁제동/현 정국 조기수습 안될땐 “파산”러시아 국민들은 끝없는 보혁세력간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사회주의통제 경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온 옐친 대통령은 지난 1년6개월간 충격요법식 급진개혁정책으로 러시아 경제를 회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해초부터는 가격자유화와 사유화의 실시 등 공산주의체제와는 전혀 이질적인 경제정책을 도입했다.
물론 이같은 급진개혁 정책에는 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물가는 지난해 최소 10배이상 폭등했으나 산업생산력은 지난 89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천6백%를 기록했던 살인적인 인플레율은 올들어서만 이미 1백%가 넘어 지난해를 능가하는 초인플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출은 25% 정도가 감소됐으며 지난해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91년에 비해 40%나 떨어졌다.
휘발유와 가스 등 연료값도 대폭 인상됐고 건설자재 등의 부족으로 건설총량이 지난 89년에 비해 54%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집없는 부랑자들이 범죄조직에 흡수돼 사회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옐친 행정부의 적극적인 사유화정책에 따라 많은 공장이 민영화되면서 기업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으며 실업자도 오는 95년엔 약 4백만명을 넘게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통화긴축정책으로 연금 및 봉급생활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루블화의 가치도 계속 폭락해 23일 현재 1달러당 6백84루블선에 공식거래되고 있으며 암시장에서는 8백루블선을 돌파하는 등 루블화는 이미 화폐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자 보수파들은 국민의 불만을 등에 업고 정부정책에 갖가지 제동을 걸었다.
보수파들은 발권은행인 중앙은행을 의회의 통제하에 두고 정부의 통화긴축정책이나 사유화정책에 맞서도록 했다.
가격자유화 역시 일부 생필품값을 동결토록 하는 등 정책수정을 가했다.
올해 실시예정인 제2단계 사유화 프로그램 역시 의회가 강력하게 반발해 일단 유보된 상태이다.
의회는 지금까지 무려 3백여건의 경제관련 정책과 법률을 개정하거나 반대하는 등 정부의 경제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이 결과 하루아침에 법률이 바뀌고 정책이 변경되는 등 체계적인 경제정책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투자나 진출을 꾀하던 많은 외국기업들이 철수했거나 사업확장을 중단한 상태다.
물론 이같은 경제적 난맥상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다.
과거 공산주의시대에는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었으나 현재는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
인플레를 우려한 나머지 은행에 저축한 예금이 대부분 인출됐으며 물건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체 국민의 70%가 빈곤층에 속할 정도가 됐으며 정부재원의 부족으로 교육·보건 등 사회복지부문의 투자가 대폭 감소돼 삶의 질은 엄청나게 저하되고 있다.
이 와중에 부패관리와 조직범죄 등이 결탁한 신흥 졸부군이 형성되는 등 국민의 계층별 위화감이 증폭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와 의회간의 대결로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토지사유화 등 일련의 개혁정책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며 정부의 각종 대안 등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올해를 경제회복의 원년으로 선포했으나 공염불이 될 공산이 높다.
의회역시 정책의 대안보다는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경제건설 추진에 장애가 되고 있다.
현재의 비상정국이 조기수습되지 않는한 앞으로 5년이내에 러시아 경제가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비관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러시아 경제회복의 관건은 서방의 경제적 지원이다. 러시아는 이달초 홍콩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고위관계자 회담에서 미국 일본 등 서방측에 통화안정기금 60억달러와 산업재건비용 70억달러 등 2백억달러 이상의 긴급원조를 요청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3일 러시아에 대한 긴급 경제지원을 역설했지만 미국의 경제사정으로 미루어 볼때 실효성있는 원조가 뒤따를지는 미지수다.
또 러시아에 대한 원조를 북방 4도 반환과 연계시키고 있는 일본이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서방의 긴급지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뿐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옐친이냐 의회냐를 떠나서 누가 러시아를 통치하든지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이다.
러시아는 자원이 보고인 만큼 정치안정이 이뤄진다면 결코 그 장래가 비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극한대립이 장기화되면 결국 러시아는 파산선고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파나 보수파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호화판 다차(별장)에서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중 누구도 국민이 처한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적어도 그같은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
세계는 경제전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 러시아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지 않는한 러시아의 장래는 암담하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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