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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의 어머니/이장훈 모스크바 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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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의 어머니/이장훈 모스크바 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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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낮 12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노모 클라브디야 바실리예브나(85)는 모스크바의 노보쿤트제프스코예 공동묘지의 언 땅속에 묻혔다.보혁대결로 가뜩이나 침울한 옐친은 장례식에서 노모의 하관을 지켜보며 오열했다. 루츠코이 부통령,조르킨 헌법재판소 소장 등 조문객들은 차례로 옐친을 위로했다. 같은시간 옐친 탄핵을 논의하던 최고회의(상설의회)는 옐친에 대한 조의의 표시로 단 17분만에 회의를 끝냈다. 이 순간만은 혼미한 러시아정국이 정쟁을 중단한듯 보였다.

옐친의 노모가 살아온 지난 85년간은 정녕 풍상의 세월이었다. 러시아의 역사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노모는 차르체제,볼셰비키혁명,1·2차 세계대전,스탈린,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 등 공산당 지도자들의 공산주의 실험을 거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시대,쿠데타 실패,소연방의 해체,러시아공화국의 출범 등 역사적인 사건들을 온몸으로 겪었다.

옐친은 그녀의 장남. 건설기능공부터 시작,예카테린부르크 공산당 제1서기,모스크바시당 제1서기,정치국원후보,러시아공 최고회의 의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변모를 거듭했다.

옐친의 모친은 평범한 러시아의 한 어머니로서 커가는 장남을 지켜보며 자상한 손길로 뒷바라지 했다.

아들 옐친이 「비상통치」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진 지난 21일 저녁 9시30분 연설을 TV로 지켜보던 노모는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며 심장에 통증을 느끼고 그 몇시간뒤 숨을 거뒀다.

측근들은 노모가 몇달전부터 자주 울면서 아들이 정치를 떠나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도 아들 걱정을 하면서 『잘해야 될텐데…』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노모는 물론 정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 걱정을 하며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장삼이사」처럼 노모의 일생 또한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나 옐친의 러시아공 출범이후 좋은 시절을 기대하던 국민들은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다.

옐친의 노모는 러시아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른채 눈을 감았다.

지금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에서 선뜻 어느쪽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촌부」의 죽음이 물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가지,아들걱정,나라걱정을 하는 어머니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의 오늘이다. 1억8천만 인구의 모국 러시아는 캄캄한 안개속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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