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두번째 모험에 나섰다. 그는 19개월전 쿠데타군의 탱크에 맞섰던 것과 달리,이번에는 국민투표라는 정치적 도박에 나섰다.오는 4월25일로 잡은 그의 국민투표는 법률적인 행동이 아니라,정치적 여론투표라고 할 수 있다. 국민투표는 간단히 말해서 국민에게 자신이나 의회중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인기투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옐친은 옛 헌법에 따라 「소련의회」로 구성됐던 러시아 최고회의의 도전을 받아왔다. 보수파가 지배하는 최고회의는 대통령의 포고령 선포권을 박탈하는 등 의회가 소련시대 헌법의 규정대로 국정의 최고기관임을 확인시키려 했다.
4월25일까지로 못박긴 했지만,옐친 대통령의 「비상통치」 선언은 초헌법적인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는 국민투표 때까지 의회의 권능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옐친이 이러한 초헌법적인 강경책으로 의회에 맞선데에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다. 민선 대통령인 그의 권력기반은 국민의 선택에 있고,조직된 정치세력이 없는 현실에서 그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와 실업사태,그리고 범죄와 부정부패 때문에 『지난날이 좋았다』는 소리도 크지만,그렇다고 개혁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보수세력이 힘을 발휘할 만큼 조직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난날의 공산통치 그리고 통제경제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경제는 이미 국민총생산(GNP)의 20%가 사기업에 의해 생산되고,노동력의 30%가 사기업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독일을 포함한 서방측은 91년 여름 쿠데타 기도 때와 달리,분명히 옐친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냉전으로의 복귀를 원치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정치적 장래에 엄청난 걸림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국민투표에서 옐친의 강세는 확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그가 얼마만한 표로 이기고,국민투표에 나타난 국민의 신임을 어떻게 정치적인 힘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옐친은 국민투표 결과를 발판으로 대통령책임제로의 개헌을 추진할 계획임이 확실하다.
개혁파들의 움직임으로 봐서 새헌법의 대통령책임제는 아마도 60∼70년대 한국과 비슷한 소위 「개발을 위한 독재」를 지향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러시아에 대한 정치·경제적 개입을 꺼렸던 과거와 달리 미국은 오는 4월3일 옐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적극적인 원조를 약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도 사실상 옐친의 비상통치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의 발전을 위해서도 옐친 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냉전의 끝장과 서울모스크바 사이의 우호·선린을 위해서도 러시아의 보수회귀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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