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심 동향이 최대변수/군 “중립선언” 지지향배 유동적/옐친 인기하락 「신임」 낙관못해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비상통치를 선포하면서 군최고통수권자의 자격으로 『군은 엄정중립을 지킬 것』을 명령했다. 군의 동향이 향후 정국향배에 최대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군이 수수방관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옐친이 비상통치를 선언했지만 이의 집행은 공권력의 투입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의회가 현 추세대로 옐친의 위헌행위를 문제삼아 탄핵을 결정하고 이를 옐친이 거부할 경우 러시아에는 두명의 군수통수권자가 존재하게 돼 군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러시아 군부의 동향은 아직 특별한게 없다.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은 21일 최고회의 보고에서 군은 자신의 통제하에 있으며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크렘린 경비를 맡은 기존 보안부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비연대를 창설하라는 옐친의 포고령에 따라,크렘린 경비부대가 보강된 정도다.
그러나 샤포슈니코프 독립국가연합(CIS) 통합군 총사령관이 예정된 중국방문을 취소하고 모스크바 주변 군부대 지휘관들이 암암리에 비상사태에 들어가는 등 군이 긴장하고 있다.
현 군사직제상으로 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주요인물은 그라초프 국방장관과 빅토르 바라니코프 보안장관,빅토르 예린 내무장관 등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옐친이 지난 91년 쿠데타 진압후 무소불위의 전권을 행사할 때 임명한 각료들이다. 이중 막강한 KGB 후신인 보안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바라니코프 장관은 옐친이 쿠데타 당시 탱크위에서 연설할 때 옆에서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측근이다. 크렘린 경비부대가 보안부대를 중심으로 개편되는 것도 옐친이 가장 신뢰하는 바라니코프가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반 군부대이다. 그라초프 장관은 보혁간의 갈등이 폭발상태에 다다랐던 지난해 12월 인민대표대회에서 군은 헌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이 발언은 그의 성향으로 보나 헌법에 규정된 인민대표대회의 지위로 보나 의회를 장악한 보수파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의 이번 조치가 헌정을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라초프도 옐친을 지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도 없지 않다. 따라서 그의 태도는 아직 유동적이다.
러시아군은 92년 5월 발표된 옐친의 독자군 창설 포고령대로라면 동유럽에서 철수하는 구 소련군까지 포함,약 2백50만명 수준이다.
핵심은 역시 모스크바 주변에 배치된 타만스키사단을 비롯,기갑 및 전략사단 등이다. 이들 부대가 옐친이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러나 옐친은 자신이 밝힌대로 군부대 동원에는 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부대가 출동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인근부대의 출동이 불가피하고 이것이 민족주의와 결합되면 자칫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의 내전과 같은 양상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
군과 함께 이번 사태의 추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또다른 변수는 국민의 지지여부다.
러시아 국민들은 지난 91년의 쿠데타 당시 군부의 독주를 맨주먹으로 막아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군부도 이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않을 전망이고 불가피하게 움직일 경우에도 민의에 따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옐친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개혁정책을 반대하는 일부 정치세력이 국민들을 길거리로 몰고나올 경우다. 이러한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는데 비상통치 찬반세력이 유혈충돌로 치다를 경우 옐친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옐친이 마지막 승부수로 선택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는데 있다. 전망은 여러갈래로 나올 수 있지만 객관적인 판단은 부정적이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옐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20% 수준에 머물고 있고 국민투표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냉소적이다.
자신들의 경제문제를 제쳐놓고 권력투쟁에 집착하고 있는 옐친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옐친식 국민투표와 똑같은 국민투표가 이미 지난해 5월 발트해의 리투아니아에서 실시되었다. 당시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독립영웅인 자신의 인기만을 믿고 의회의 강한 반발을 무릅쓴채 대통령중심제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체 유권자의 57.5%만이 국민투표에 참가,69.5%가 지지함으로써 순과반수를 넘지못해 란츠베르기스의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그는 올 2월 총선에서도 패배,구 공산당의 브라자우스카스에게 권좌를 넘겨주었다.
이같은 사태가 러시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연성은 충분하다. 옐친은 지난 91년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인기가 절정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57%의 득표율에 그쳤다. 때문에 옐친에 대한 국민적 환상이 깨어진 지금 국민투표 참가율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거나 과반수 지지얻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물론 광범위한 부동층이 옐친의 국민투표가 실패할 경우 혼란이 더 가중된다는 점에서 차선책으로 옐친을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옐친의 이번 정치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이 문제는 전적으로 군과 민심의 동향에 달려있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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