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정면돌파 승부수/의회 배제 대국민 직접호소/반발거세 유혈충돌 가능성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20일 포고령에 의한 직할통치라는 비상체제를 선언하고 국민투표 강행을 발표하면서 러시아는 내전의 위기도 배제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 몰렸다.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민선대통령 옐친은 그동안 자신의 개혁추진에 최대 걸림돌이 돼온 인민대표대회(의회)와 더이상 타협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자신과 부통령에 대한 신임 및 새로운 헌법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강행이라는 마지막 대결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함께 국민투표 실시전까지 대통령의 포고령으로 국가를 직접 통치한다는 비상체제가 선포됐다.
옐친이 이같은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은 대국민연설에서 밝혔듯이 자신을 비롯한 민주개혁 세력이 구 공산주의 보수세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인민대표대회는 지난 13일 폐막된 회의에서 국민투표 실시안 부결,대통령권한 축소안을 의결하는 등 일방적인 반옐친 노선을 택했다.
옐친은 결국 민주적 방법에 의한 의회와의 타협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신을 선택한 국민들에게 국가통치의 방법을 다시 묻는 것외에 선택의 여지가 거의없는 궁지로 몰렸다.
그러나 옐친의 비상체제 선언과 국민투표 강행계획은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
이점과 관련,러시아내 최대 정파인 시민동맹의 향배는 가장 큰 관심의 하나이다. 시민동맹의 대표격인 루츠코이 부통령은 『옐친의 결정은 유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면서 『비상체제 선언은 위헌이며 국민투표는 러시아연방을 분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르킨 헌법재판소 소장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하면서 옐친의 선언을 반헌법적 조치로 규정했다.
특히 강경보수파들은 옐친을 헌법 파괴분자로 비판하면서 그를 즉각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옐친이 포고령에 의한 비상통치를 통해 정국을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의문시되고 있다.
비상통치에는 군과 경찰 등 물리력을 가진 세력의 동원이 불가피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자칫 유혈 내전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군부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밝히고 있으나 일부 장성들과 장교들은 조직적으로 반옐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지역사령관들이 국방부의 지시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파가 자파를 지지하는 군장성을 동원,반옐친 행동을 기도할 가능성도 있다.
군부 일각에서는 최근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과 구 동독 및 발트 3국에서의 철군 등에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으며 소장파 장교들은 주택문제 등 군에 대한 대우가 나빠진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또 러시아연방내의 각 자치공화국과 지방정부가 모스크바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를지도 문제다.
자치공화국은 대부분 독립을 원하거나 경제적 자치를 주장하고 있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것을 원치않고 있다.
지방정부 역시 대부분 구 공산체제하의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어 옐친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국민투표에서 과연 옐친이 승리할 수 있느냐이다. 옐친은 지난 91년 쿠데타를 저지했을 때와는 달리 현재 20% 정도밖에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충격요법식 급진개혁정책으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처음 실시할 당시보다 훨씬 하락했다.
국민들은 또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권력투쟁에 식상한 나머지 정치일반에 대해 심한 거부감과 무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옐친도 이점을 의식,현재의 정치위기는 국민대 구 공산주의 세력과의 뿌리깊은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러시아가 결코 과거의 공산체제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 등 보수파는 옐친이 국가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역시 신통치 않다. 옐친은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같이 흘리면서 고통을 분담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차르(황제)체제의 폭정과 무정부상태에 반대,레닌의 공산주의체제를 선택했으며 지난 70년의 공산주의체제하에서 실시된 계획경제와 통제를 거부하고 현 체제를 선택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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