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의 경제팀은 금융실명제가 마치 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국민이 알고 있으며,언론이 이를 부채질한다고 불평한다. 그것은 일부 사실이다. 지금 온국민은 실명제야말로 새정부의 개혁의지를 측정하는 시험대라고 생각하고 있다.국민들이 『실명제,실명제…』하게 된 것은 역대정부가 확고한 실천의지없이 실명제를 정치적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5공 6공이 모두 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장담하다가 흐지부지 중단했는데,그런 사이에 국민은 실명제라는 항아리속에 기득권층에 불리한 것이 가득차 있기 때문에 뚜껑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의심을 하게 됐다.
6공때 노태우대통령은 경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던 문희갑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급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올리면서 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했고,문희갑씨는 『혁명을 막기위해 경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선언을 했다. 그는 89년 7월의 인터뷰에서 『경제정의구현 차원에서 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을 반드시 시행하겠다. 지금 경제를 대수술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기득권층은 작은 것을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어느날 슬그머니 경제개혁의 고삐를 놓아버렸고,실명제 시기상조론이 판을 치더니 실명제는 물건너가 버렸다.
민자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실명제를 다시 공약으로 내세웠는데,과거에 실명제를 추진하다 중단했던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는 준비와 연구가 완벽하리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정부는 『5월에 실명제 실시일정을 밝히겠다』고 시원시원하게 나오다가 『실명제를 신경제 5개년 계획에 포함시켜 6월에 일정을 밝히겠다』고 후퇴했다. 5월에 발표하려던 것을 6월에 발표한다는데 무슨 후퇴냐고 그들은 항의하지만,눈치빠른 국민들은 벌써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끼고 있다.
새정부의 경제팀은 실명제 실시로 경제가 어떤 부작용을 겪을 것이냐는 우려와 함께 실명제가 연기되거나 무산될 경우 어떤 정치적 영향이 올 것이냐는 경제외적인 부담까지 떠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의견조절을 하지 않고 과거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실명제만이 개혁의 전부냐』고 국민을 원망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국민은 그동안 정부의 요란한 선전으로 실명제가 경제개혁의 알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역대정부가 준비도 확신도 없이 실명제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동안 기만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품게됐다. 실명제 논란은 경제를 정치에 이용함으로써 경제외적인 압력을 자초한 좋은 예이다. 새정부는 그 압력에 굴하지 않고 그 압력을 존중하면서 실명제에 접근해야 하는 어려운 첫 과제를 잘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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