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T 탈퇴」 철회가능성 열려/우리 입장 타진없어 성사 “섭섭”미국과 북한이 17일 중국 북경에서 참사관 접촉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정부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기대는 북한이 극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을 철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 비롯되고 있다. 반면 미·북한간의 접촉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려를 갖기에 충분하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18일 『그동안 북경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해 서울과 북경은 물론 서울과 평양간의 간접회선을 엮기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면서 『그러나 이렇게 빨리 미·북한간의 접촉이 이뤄질줄은 몰랐다』고 크게 의아해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이번 미·북한간의 접촉에 대한 경위와 내용이 미국측으로부터 통보되어오길 기다릴 뿐이다』면서 『북경에서 워싱턴을 경유,서울로 「소식」이 전해지려면 다소의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가 미·북한간의 참사관 접촉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직후 워싱턴은 우리 정부에 『북경에서 북한과의 참사관 접촉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온바 있다. 이 소식에는 『어쩌면 북한이 새로운 접촉을 시도해올지도 모른다』는 「주관적인 단서조항」을 달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우리 정부는 다시 워싱턴으로부터 『북한측이 「참사관 접촉 거부를 재고하겠다. 새로 답변을 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다가 우리 정부는 미국측으로부터 『이미 접촉을 가졌다』는 통고만 갑자기 받게된 것이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북한의 태도가 급반전한데 대해 크게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NPT 탈퇴선언과 미국의 접촉제의 거절의 명분을 팀스피리트훈련에다 두고 있으면서도 그 훈련이 한창 절정에 달해있던 17일 전격 접촉에 응했다는 점이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경의 소식통들을 종합해볼때 북경주재 북한관리들이 미국의 접촉제의를 당연한 내부 훈련에 따라 일단 거절해놓고 평양에 보고했다가 재접촉시도 지시를 받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같은 평양의 새로운 지시는 김정일로부터 직접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면서 이번 접촉이 갖게될 의미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이번 북경접촉이 의미를 갖게 되면서 우리의 기대와 우려는 한층 그 폭을 넓히게 될듯하다. 그 기본적인 이유는 미·북한간의 접촉이 각료급 회담 수준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분석에서 기인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관계개선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은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란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무조건 북한에 대해 「핵의 투명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거꾸로 이를 위해선 「격상된 미·북한 대좌」도 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1월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협정서명을 앞두고 북한의 김용순 당국제담당비서를 뉴욕으로 불러 당시 켄트 미 국무차관과 회담을 가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과 「격상된 대좌」를 갖는 자체는 우리 정부에 뚜렷한 손익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형태의 대좌든 우리 정부의 입장과 주장이 한껏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켄트김용순 대좌」때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김용순이란 인물의 선정문제에서부터 충분한 사전협의를 나눴다. 그러나 이번 북경접촉에선 우리나라가 다소 소외되어 있었던듯한 감을 지울 수 없다는게 우리의 일차적 우려의 출발점인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켄트김용순 대좌」 때보다 북한이 스스로 이 약속을 깨겠다고 선언한 지금의 상황이 우리에겐 훨씬 「심각한 당사자」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현재의 상태가 그동안 자신들이 주도해온 「대량살상무기를 억제하는 신국제질서」를 시험하는 첫 시금석으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대북 제스처가 위협이든 회유든 전에 없이 강력한 방법을 선택하려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파장은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번져올 것이 틀림없다.
우리 정부는 이번 북경접촉이 미국측이 스스로 밝힌바처럼 『NPT 탈퇴에 대한 우려를 강력히 전달했다』는 수준일 수도 있고,보다 큰 「거래」를 위한 예비접촉일 수도 있다는 두가지 가능성을 함께 상정해놓고 있다. 그 어느 것이든 미국이 우리측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승주 외무장관이 『미국측이 우리의 입장을 악화시키는 그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정병진기자>정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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