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산정 미식 회계 일방 적용/주력 성장상품 「파상피해」 예상16일 밤(한국시간 17일 새벽) 미 상무부가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 고율의 덤핑마진율을 확정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세계무역전쟁의 「약육강식」 현장에 대책없이 내던져지게 됐다.
이번 판정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입을 피해는 덤핑판세 부담과 그에 따른 수출차질만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염려되는 사실은 미국이 우리나라 전체수출 가운데 25% 내외를 차지하는 제1의 주력시장이라는 점.
우리 경제는 수출이 안될 경우 선진국 진입은 커녕 적정수준의 성장조차 기대할 수 없는 특수체질이다. 이런 형편에 최대 수출시장에서 주력 성장상품으로 급성장해 나가고 있던 반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으니 앞으로 경제전반에 미칠 파급영향이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명백한 무역보복
미 상무부의 이번 최종판정 배경을 살펴보면 앞으로 미국의 무역보복 공세가 반도체뿐 아니라 철강 자동차 일반기계 등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에 차례대로 퍼부어질 것이 확실해 더욱 우려된다.
미국측은 이번 판정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회계방식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미국방식을 적용,고율의 덤핑마진율을 산정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내 회계방식은 연구개발비의 경우 5년 정도 나누어 비용처리하는 반면 미국에선 한해에 한꺼번에 처리한다. 지난해 1천억원을 연구개발에 썼다면 우리 입장에선 2백억원만 지난해 비용으로 잡히는 반면 미국에선 전액을 지난해 비용으로 처리,향후 4년간 매년 2백억원꼴로 원가계산상 덤핑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회계방식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 덤핑제소중인 철강은 물론 자동차 일반기계 가전 등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어느 제품도 덤핑관세 보복을 피할 길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산 철강류에 대해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금융기관의 대출금리와 시중실세금리 차이 ▲해외차관 배분 ▲철강공장주변 도로 항만건설 비용까지 싸잡아 정부 보조금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번 반도체 부문의 최종 덤핑판정 논리를 적용,모든 것을 미국식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철강도 상계관세나 덤핑관세 부과를 피할 방법이 없다.
반도체 덤핑관세 부과여부가 돌이킬 수 없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오는 4월29일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산 반도체의 덤핑으로 미국내 산업피해가 있었는지 여부를 가름하는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ITC의 판례로 보면 산업피해가 없다는 결정이 내려진 경우가 전체 제소건수의 20∼30% 가량. 무피해 판정이 나면 덤핑관세는 물지 않아도 된다. 정부와 업계가 ITC 공청회에 총력을 기울이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피해가 확정된다면 미 행정부는 즉각 우리 업계에 현찰로 관세를 예치하도록 명령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의 대미수출실적은 문제가 된 D램만 따져 8억5천만달러 수준. 줄잡아 6천만∼7천만달러에 이르는 관세를 고스란히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수출 다변화 시급
업계는 이번 판정조치로 당장 대미수출을 중단하는 사태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국내 장기 계약업체와 거래를 끊일 수 없는데다 미국시장의 특성상 한번 물러나면 재탈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출혈을 각오하고 원가절감 등에 주력한다면 국제시장의 반도체 공급부족과 우리 업체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그럭저럭 견딜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당분간 종전과 같은 대대적인 수출확대는 어려워지고 동남아 등지로 시장을 바꿔야 한다. 그 공백은 일본이 앉아서 따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번 판정결과 1M,4M뿐 아니라 16메가 D램에 대해서도 덤핑관세가 부과된데 대해 더 우려한다. 국내 전자업계는 지난해 9천8백억원,올해 1조3천억원의 대규모 투자로 16메가의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수출도 제대로 못해본채 도매금으로 넘어가 무역보복부터 받게 된 셈이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최종판정에 따라 기존의 수출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통상압력 연장선
지난 80년대 중반이후 미국은 해마다 분야와 대상을 바꿔가며 우리 산업의 각 부문에 걸쳐 통상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이번 반도체 덤핑판정도 그 연장선의 하나에 불과하다. 최대 수출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당연하나 양국간 무역수지가 적자기조로 돌아선 최근까지 이렇게 일방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우리의 통상정책 전반에 걸쳐 냉정한 검토가 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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