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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잡을 수 있게 하자/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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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잡을 수 있게 하자/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3.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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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성이에 먼저 찾아들었던 봄볕이 갑작스러운 꽃샘바람에 움츠러드는 듯하다.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은 이제 막 내정개혁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정부를 깊은 충격에 빠뜨린 꽃샘바람이다. 잇단 개혁조치가 가져다준 서울의 봄을 만끽하려던 국민들이 기습적으로 겪고 있는 당혹과 심리적 추위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 사태가 뜻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어떻게 진행되어 어떤 결말로 가는 것이 다행한 일인지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않는다.월요일 아침에 받아본 두 조간신문은 북한의 핵확금지조약 탈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전략을 다급하게 보도하면서 하나는 남북한간의 직접 대화를 통한 접근을,다른 하나는 대화의 동결을 통한 우회접근을 각각 부각시켰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보도내용이다. 신문만이 아니라 신문을 보는 국민은 더욱 종잡을 수가 없다. 어느쪽 보도가 옮으냐 그르냐 보다는 정부내의 정책결정 당사자들 자신의 의견이 헷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심이 안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당초부터 선명하지 않았다. 그 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6공정부가 91년 12월 남북 기본합의서라는 「획기적 성과」에 이르렀을 때에도 핵문제의 해결은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로서 거론되지 않았다. 비켜갔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 사정은 딴판으로 달라져,핵문제의 해결없이 남북관계에는 어떤 진전도 있을 수 없다는 강경입장이 되풀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팀스피리트훈련이 북한 핵문제에 연계된 것임은 그같은 입장의 한 표현이다.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핵문제에 관한 우리 입장을 더 종잡을 수 없는 사태에 빠져든 느낌이다. 『감상적인 통일지상주의와 냉전적 관변통일론 모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통일주무장관은 『북한의 핵문제와 대북경협을 연계시키지 않겠다』거나,『핵문제만 해결되면 연내 남북한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공공언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어 새정부 출범후 처음 열린 통일관련 장관들의 전략회의는 이인모노인의 「무조건」 송환을 결정했다. 아울러 기업인들의 북한방문 허용을 검토할 것이라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북한과의 경협 등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인모노인의 송환은 「인도적 차원」의 결정이 틀림없지만 「정치적 차원」의 의미가 더욱 강한 것이다. 그 결정을 가리켜서 「감상적」이라고 비판한 현실주의자들의 견해는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북에서 들려온 「핵확금조약 탈퇴」 선언으로 뜻밖에 고무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핵확금조약이 전세계적으로 발효된 기점은 1970년 3월5일이다. 바로 그 무렵인 3월7일자 한국일보가 당시 뉴욕대학 부교수이던 김경원 현 사회과학원장의 「동아시아에서 핵확산을 막기위한 대안」이라는 장문의 기고를 실었음을 찾아 읽을 수 있다. 김 박사는 그 글의 결론에서 「핵무기의 확산문제는 긴장의 심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핵확산 방지정책의 중요한 원칙은 이 지역의 긴장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23년뒤인 지난 3월5일자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 박사는 김영삼정부의 정책우선순위에서 북한 핵문제가 임박한 돌출과제로 부담이 되리라는 「정확한 예견」을 하고 있다. 이미 23년전에 핵확산문제의 심각성을 동아시아의 문제 틀안에서 거론했던 김 박사는 『북한 핵문제를 다루어가는 필수적인 조건은 핵무기 문제의 성격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책수단에 대한 유연하고 창의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대응방법이 그렇지를 못하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

지금 북한 핵문제가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핵문제를 비롯한 북한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헷갈리는데 있다.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관된 정책비전을 제시하고 그로써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가야 할 새정부의 통일팀이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계속하는 한 국민의 불안과 조바심은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마음속으로라도 「연내 정상회담」같은 한건주의를 열망하고 있다면 통일정책에 관한 한 「신한국」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된다.

새정부의 통일팀은 모두 명망있는 학자출신들이다. 이들에게 남다른 기대를 거는 까닭은 속물 정치인다운 맹목의 위험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결정이든 국민을 합리적으로,알아듣기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통일정책이나 북한정책이나 간에 어떤 복잡한 정책도 쉽게 풀어가는 요령이 절실하다. 평양에는 등화관제가,서울에는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는 우리의 「긴장의 심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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