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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의 교본/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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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의 교본/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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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일의 프랑스 총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의 참패가 예상되는 가운데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은 자크 랑 문화부장관의 거취에 쏠리고 있다. 우파가 승리하면 1986년처럼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밑에 동거내각이 들어서게 될 것이고 랑 장관은 그때처럼 물러나기 쉽다. 그런데도 그의 정열은 식을줄 모른다. 지난 2월말에는 각의에 교육방송 TV채널과 국제예술사연구소의 설립안을 내놓는가하면 3월들어서는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에 관한 계획을 발표했다. 누가 『몇주일밖에 안남았는데 무의미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짧은 시간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대답한다.자크 랑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입각한후 동거내각 때의 2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10년간 문화부장관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최장수 각료다. 그만큼 국민들의 인기도 높다. 문화부장관으로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당당한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1991년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으로 랑을 37%로 첫손 꼽았고 미테랑은 31%였다.

올해 53세의 랑은 본시 파리대학 법과를 나온 법학도다. 24세때인 1963년 낭시의 대학극장 극장장이 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은후 세계대학 연극제를 창설하여 10년을 이끌어오는 동안 이 연극제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대학때 대배우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대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킬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이 대학연극제였다』고 그는 말한다. 낭시대학의 법학교수로 있다가 1976년부터 사회당에 참여하여 문화관계를 담당했으며 2년후 제1서기의 특별보좌관이 되고 3년후 입각했다.

문화부장관으로서의 랑은 1959년 드골정부에 초대 문화부장관이 되어 10년간 재임한 앙드레 말로의 명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미지를 일신한 사람이다. 전국에 산재한 1만5천개의 역사적 기념물들을 손질해 일반공개하고 2만5천개의 건물과 3만점의 예술품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했다. 그는 문화재의 범주를 확대해서 건축가 코르뷔제가 설계한 공장건물,시골의 조그만 분수대,사진작가 만 레이의 사진기,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나오는 샹젤리제의 카페 「푸케」같은 것까지 포함시킨다. 전통문화재와 현대 예술의 접목도 시도하여 팔레 로아얄 건물 안뜰에 뷔랑이란 조각가의 기둥들을 세워 선세이션을 일으켰다. 문화재 보수를 맡은 기업에는 그 관리를 맡기거나 거기서 문화행사를 주최하게 하여 수익을 올리게 해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제는 문화재를 짐으로 여기지 않고 고부가가치의 자산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헌돌밑에서 광맥을 캐내는 일」이 된 것이다.

문화재뿐이 아니다. 매년 하지의 밤 파리의 구석구석에서 프로와 아마가 뒤섞여 각종 악기와 울려대는 「음악축제」,표 한장으로 하루종일 아무 영화관이나 드나들 수 있는 「영화축제」도 발안했다. 6천명을 수용하는 록전문 음악회장 「제니드」도 만들었다. 라데팡스의 새 개선문,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등 명물은 미테랑 정권의 문화적 기념비들이다.

파리와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그의 지방문화정책도 괄목할만하다. 곳곳에 박물관,문화센터를 세우면서 시장이나 지방의회 의장이 먼저 후원자가 되게 하여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산 총액이 중앙정부 문화예산의 3배에 이르게 했다.

미테랑은 1981년 대통령선거때 정부의 문화예산을 총예산의 1%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랑 장관의 주도로 현재 취임당시의 3배인 0.92%까지 올려 놓았다.

이번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하더라도 아무로 랑 장관의 후임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랑 장관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가 두렵기도 하거니와 그 많은 문화예산이 벌써 바닥이 나있기 때문이다. 우파가 내년도 문화예산을 1%선으로 유지한다 하더라도 랑이 벌여놓은 사업을 실행하자면 10억프랑(약 1천4백억원)이 더 있어야 한다. 랑은 이렇게 정력적이고 발랄한 문화부장관이다.

랑 장관의 「문화패권주의」에 대한 평가는 1986년에 이미 프랑스 국내외의 세계적 예술인들이 공동명의로 발표한 성명에 나타나 있다. 이 성명은 『과거 5년동안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랑 장관의 추진아래 프랑스는 문화적으로 괄목할만한 도약을 했고 국제적으로 큰 위신을 회복했다』는 내용이었다.

자크 랑은 문화를 정부시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그가 인기인이 된 것은 사회당의 정책부재를 그의 문화로 메웠기 때문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미테랑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과 지원이 컸다. 미테랑은 1988년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크 랑은 옳았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의 김영삼대통령은 선거때 공약에서 「문화예산 1%」를 내세웠다. 미테랑 대통령의 포부와 같다. 그러면서도 새정부에 문화주의의 의지가 있다는 징조는 아직 아무데도 안보인다. 오히려 문화계 일각에서는 문화멸시를 우려하기까지 한다. 이럴때 자크 랑의 10년은 생생한 교본이 될 것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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