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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새벽 연 「십자가 삶」/어제 타계한 지학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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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새벽 연 「십자가 삶」/어제 타계한 지학순주교

입력
199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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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옥고… 「정의사제단」 결성 촉발12일 72세를 일기로 선종한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주교는 3공과 유신으로 이어지던 7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민주화운동과 인권투쟁을 이끈 우리 사회의 원로였다.

교회의 사회선교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개발독재에 희생당하던 인권유린 현장을 가깝게 지켜본 그는 야당마저 침묵이 강요되던 유신시설에 곧바로 사회정의실현에 앞장섰다. 인권탄압과 노동문제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 때문에 74년 내란선동과 긴급조치 1·4호 위반혐의로 구속,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아 복역중 이듬해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지 주교의 구속은 젊은 사제들이 중심이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결성을 가져오고 그는 사제단과 더불어 유신독재가 무너지기까지 천주교의 사회참여를 주도했다. 사제단은 비록 교회의 공인을 받지 못한 임의단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들어와서도 민주화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

지 주교가 지난 65년 원주교구가 설립되면서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하자 역대 독재정권은 지 주교와 원주교구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정도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 여정에 그는 커다란 기여를 했다. 교회의 사회참여에 부정적인 교회 안팎의 여론에 대해 지 주교는 『예수는 세상이 더 좋아지도록 모두가 힘써 악을 제거하라고 가르쳤다. 교회는 현실속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바로잡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사회참여의 당위성을 밝혔다.

1921년 평남 중화군 중화면에서 태어난 그는 김수환추기경과 함께 52년 성신대를 졸업,사제로 서품됐고 이 두사제는 우리 사회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서로 협력하여 난국타개의 지혜와 방향을 제시해왔다.

지 주교는 49년 월남을 시도하다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는데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85년 9월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방문,37년만에 여동생 용화씨와 재회하는 장면은 전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지 주교는 8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 문부식씨와 김은숙양의 자수를 당국에 주선하기도 했다.<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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