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성공 정치로 실패/무언의 압력에 “자의반 타의반 절연”「철강거인」 박태준씨(66)가 포철을 떠났다. 12일 주총에서 명예회장직과 이사직 사퇴서가 수리되고 부설 제철학원 이사장직도 반납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박씨와 포철간의 최소한의 공식적 연결고리도 완전히 끊어지는 셈이다.
창사 4반세기만에 2천1백만톤의 연간 조강능력을 갖춘 세계 제3위의 제철사로 성장한 「포철의 신화」는 사실상 박씨 개인의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의 사나이」 「한국의 카네기」 등 화려한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녔고 중국의 등소평조차 감탄했을만큼 박씨의 명성과 능력은 세계적인 것이었다.
육사 6기 출신인 박씨는 68년 박 대통령의 제철소설립 지시에 따라 「철의 생애」를 시작했다. 시기상조라는 여론속에서도 와세다대 재학시절부터 맺어온 일본 정·재계 인사와의 교분을 통해 대일청구권 자금중 7천만달러를 건설지원금으로 돌리고 기술지원까지 받아낸 것은 아직도 포철맨들 사이에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일사불란을 강조하는 독특한 경영으로 15년만에 조강능력 9백10만톤의 포항제철소 4기를 완공하고 지난해 광양제철소 4기를 준공함으로써 25년간의 대역사를 완성한 것은 좀처럼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 것이다.
측근들은 박씨의 사퇴배경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표현하고 있다. 10일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박씨는 『지난해 10월이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이제포철도 나 개인 의존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명예회장 취임이후에도 박씨는 중국과 동남아현장을 바쁘게 다니며 해외투자 사업을 직접 추진해왔고 특히 미국의 철강덤핑 제소 등 산적한 현안앞에서 즉각사퇴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경로를 통한 현 정부와의 화해시도가 무산되고 국세청의 세무감사 등 「무언의 압력」이 가해지자 박씨는 포철과의 단절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측근들은 보고있다.
포철 관계자들은 박씨의 정치입문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였다고 아쉬워하고 있다.<이성철기자>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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