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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취임사­북 신년사/최상용 고대 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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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취임사­북 신년사/최상용 고대 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한국논단)

입력
199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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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 주석은 작년 12월31일 「중앙인민위원회」에서 금년도 신년사를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민시대를 여는 역사적 취임사를 했다.○부끄러운 한반도 모습

나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취임사와 신년사의 내용을 세세하게 분석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세계속의 한반도의 위상을 확인하고 미래의 통일된 조국을 전망해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두문서를 면밀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김 주석의 신년사는 새로운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살고 있는 전인민이 매일같이 학습하는 강령적 문서로서 북한의 당면과제를 알아보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일차 자료이다. 그리고 과거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이번에 나온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사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충격을 주었으며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국정의 방향을 제시한 기본문서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자료를 주의깊게 읽어 보노라면 우리의 남북한 동포들이 그동안 어처구니 없는 허구의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는 낙원이라고 노래 불러온 북한의 딱한 동포들이나 선진국이 다된 것처럼 우쭐대던 우리의 경박한 모습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북한의 신년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흰 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 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려는 인민의 숙망」을 실현하는 것을 사회주의 건설의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흰 쌀밥과 비단 옷과 기와집이 우리 전통속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실질적으로 이 정도가 「인민의 숙망」이요 「사회주의의 목표」라면 한가닥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어느 외국 전문가의 말대로 참으로 안타깝기 조차하다.

○대화 있어도 교류없다

그렇다면 남한의 처지는 어떤가. 지금까지 북한 동포들은 가난을 공유하면서도 열광적 단결력을 과시해 왔다면 남한은 풍요와 부패속에서 오히려 무정부적 혼돈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김영삼대통령은 그의 취임사에서 3대 개혁목표로서 부패척결,경제회복,기강확립을 들지 않았는가. 그동안 한탕주의,과소비,부패불감증 등의 망국적 풍조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우리 현실에 대한 솔직하고 용기있는 진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취임사와 신년사에 나타난 상황이 제각기 진실이라면 참다운 의미에서의 평화공존이나 통일을 기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통일이 남북한 당국자만의 타협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에 거주하는 민족의 삶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일진대,오늘날 남북한 동포의 삶의 모습은 실과 바늘의 관계가 아니라 물과 기름과도 같이 협력과 화해의 고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가끔 우리에게 대화는 있어도 교류가 없다고 비판한다. 중국인들간에는 외화 내빈의 고위급 대화는 별로 없어도 국민수준의 교류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상황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교류할 수 있는 여유와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방과 개혁으로 사회주의적 빈곤을 극복해가고 있고 대만은 후발자본주의국으로 출발했으나 부패척결에 성공한 나라이다.

이렇게 볼때,남북한의 지도층이 중국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북한은 빈곤과의 투쟁에서,그리고 남한은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길만이 통일을 정상적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의 북한이 빈곤속에서 지도자들이 부패하거나 남한이 구조적 부패의 악순환으로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 조국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그런 상황하에서는 통일이 예고없이 들이닥쳐도 걱정이다. 북한에서 지도층이 부패하지 않고 인민의 생활이 향상되고 남한이 개혁을 통한 정치·경제적 안정을 뿌리 내린다면 통일의 비용도 적게들 것이고 통일로 말미암은 각종의 부정적인 대가도 최소화될 것이다.

○서로 빈곤·부패 이겨야

역사적 경험에서 보면 인민이든 국민이든 요컨대 민중이 나라를 망친 적은 없다. 멸망의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공통된 가장 큰 이유는 지도층의 부패이다. 그점에서 김영삼 정권의 문제의식은 옳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을 위한 유효한 방법의 선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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