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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국민의 반란/이상호 동경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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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국민의 반란/이상호 동경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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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의 「황제」였던 가네마루 신(김환신) 자민당 전 부총재의 돌연한 구속은 「토요일밤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가 구속된 6일은 4월부터 시작되는 93년도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중의원을 통과한 날로,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정권으로서는 겨우 한숨을 돌리려던 때였다. 과다한 흑자로 세계 각국에서 쏟아졌던 비판을 「경기자극형」 예산안이라고 받아 넘기려던 순간이었다.

가네마루의 구속은 크게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그의 구속이 국민의 승리라는 점이다. 가네마루가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사건으로 야기된 정치적 위기를 20만엔의 벌금형이라는 약식 기소로 가볍게 피해가려하자 일본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들은 한때 「경제 1등국,정치 3등국」이라며 자포자기하기도 했으나 검찰과 정치권에 맞서 가네마루 불구속의 부당함을 줄기차게 지적해왔다. 검찰청사에서는 물론 동경시내 곳곳에서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였고,일부 시민은 가네마루를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초까지의 고발건수는 무려 3만1천여건.

물론 이번 구속의 직접적 원인을 검찰이 국민들의 반대여론에 밀린 탓으로만 볼수는 없다. 탈세를 적발한 부서도 사가와규빈사건 담당이 아니라 자금의 흐름을 조사했던 탈세사건 전문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더라도 자금의 흐름을 조사하게 된 동기는 역시 국민들의 여론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이 지니는 두번째 의미는 정치자금에 관한 베일이 다소나마 벗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네마루 전 부총재가 의원직을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리쿠르트사건으로 모든 이들이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을 때 그가 뒤로 부정한 자금을 받는 뻔뻔스런 짓을 저질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가네마루 구속으로 「밀실정치」로 상징되는 일본의 정치가 하루아침에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치가는 기업에 약하고,기업은 관료에 약하며,관료는 정치가에 약하다」는 기본구도속에서 파생된 「정경유착」의 뿌리가 너무도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 국민들이 부정한 정치를 더이상 묵과하지 않겠다고 나선 점이다. 가네마루의 구속은 일본 국민이 진정한 「정치대국」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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